‘대머리 망토’ 원펀맨이 머금은 삶의 비애
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려 합니다. 1965년 비틀즈 싱글 곡 ‘데이트리퍼(Day tripper)’는 “당일치기 여행자”를 일컫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건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니까요. 브라질 그래픽노블 ‘데이트리퍼’도 영감을 줬습니다. 이 만화엔 삶을 담는 소설가를 평생 꿈꾸지만, 실상은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 담당기자가 나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우리네 인생과 무척 닮지 않았나요. |

3년의 고행 끝에 무소불위의 초인이 된 사이타마. 도대체 적수가 없다. 괴물이건 외계인이건 순식간에 때려 부순다. ‘북두신권’ 켄시로의 “넌 이미 죽어있다”처럼 멋진 대사도 읊고 싶고, 마블 히어로처럼 신나게 싸우며 기예도 뽐내고 싶건만. 그냥 다 원 펀치다. 영웅의 길이란 게…, 원래 이리 시금털털한 거였나.

곤궁한 살림살이와 안티히어로 운명.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의 설정이 살짝 묻어나는 원펀맨의 미학은 이 어이없을 정도로 엉켜 있는 ‘부조리’에 있다. 누구보다 강한 초인이 대중에게 외면 받으며 가난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대인배’ 사이타마는 부와 명예에 초연하지만, 얄궂게도 삶의 숨겨진 속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다들 정의니 진실이니 그럴 듯한 말로 떠들어대지만, 우리 앞엔 사필귀정만 기다리지 않는다는 걸. 도시가 궤멸됐는데도 과거 사이타마를 내쫓았던 악덕 집주인의 빌라는 멀쩡한 것처럼.

실은 요즘 ‘원펀맨’이 흘러가는 모양새는 다소 아쉽다. 온갖 등장인물에 죄다 스토리와 캐릭터를 부가해, 이삼 일치 에피소드로 연재를 장장 3, 4년을 끌고 있다. 그게 ‘원피스’처럼 서사의 설득력을 갖췄다고 보기도 2% 부족하다. 다루는 얘기가 많다보니 사이타마는 주변인물로 전락한 느낌. 오히려 ‘드래곤볼’ 베지터를 똑 닮은 악인 가로우가 훨씬 돋보인다. 원펀맨은 언제나 한방에 끝내니 싸움이 뻔해지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겠으나….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하지만 원펀맨은 원래부터 그런 모순이 가득하기에 더 흥미진진했다. 겨우 ‘대머리 망토’란 활동명이나 지으려고 2시간씩 탁상공론 하는 히어로협회(라 쓰고 ‘정부’라 읽는다), 약해빠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인데 외모와 우연 탓에 최강자로 대접받는 가짜 초인, 협회 돈줄의 아들을 구하려 다른 이들 희생은 당연시 여기는 풍조. 이게 어디 만화에서만 일어나는 걸까. 진짜 말 안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곳. 그건 다름 아닌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현실세계다. 단지 그걸 한방에 없애줄 영웅만 존재하지 않을 뿐.

[추신] 사아타마가 힘을 얻은 ‘3년의 고행’은 뭘까. 바로 매일 운동이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스쿼트(squat) 각각 100회. 그리고 달리기 10㎞. 다른 히어로들은 따진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다. 그게 뭔 비결이냐”고. 정말? 그럼 2023년, 딱 1년만 이렇게 해보자. 그럼 우리도 영웅 언저리쯤 갈 수 있지 않을까.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