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사건 주요 공범인 ‘분양대행업자’ 관리사각지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12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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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의 빌라 밀집 지역. 2023.1.9 뉴스1
서울 강서구의 빌라 밀집 지역. 2023.1.9 뉴스1
‘빌라왕’으로 대표되는 전세사기의 주요 공범 가운데 하나로 ‘분양대행업자’들이 지목되고 있지만, 이들이 정부의 관리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현재 30채 이상 주택 분양대행업자에 대해서는 관리 규정을 두고 있지만, 30채 미만 주택이나 오피스텔, 생활숙박시설 등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전세사기와 같은 소비자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법률 정비와 교육 훈련 강화 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이슈와 논점-부동산 분양대행제도 개선을 위한 쟁점과 과제’)를 발표했다.

●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양대행업자’

6일 보고서에 따르면 분양대행업자는 시행사나 시공사와 건축물의 분양 업무와 관련한 위임계약을 맺고, 분양성과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받는 사업자이다. 한마디로 분양을 위임받은 대리인이다.

분양대행업자는 광고를 내거나 직원이나 부동산공인중개사를 동원해 분양사실을 알리고 분양사무실을 찾아온 소비자에게 분양가격, 교통 등 입지요건 등 분양에 필요한 정보를 설명하고 청약을 유도해 분양계약을 성사시킨다.

문제는 분양대행업자에 대한 정확한 시장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다 대부분 영세하다는 점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국의 분양대행업체는 대략 2000~2800개, 종사자는 4만6000~6만5000명으로 정도로 추정됐다. 업체당 평균 종사원은 23명 정도이며, 전체 분양대행업체의 83%가량이 40명 미만 업체의 영세업체였다.

게다가 주택 30채 이상 규모를 분양하는 경우에만 분양대행업자에 대해 주택법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등을 통해 업무 범위와 감독 및 교육실시 규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나머지 30채 이하 주택이나 오피스텔 등과 같은 건축물 관련 분양대행업자에 대한 규정은 아예 없다.

부동산 거래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2018~2022년까지 최근 5년 간 오피스텔과 생활숙박시설, 도시형 생활주택 등은 매년 10만 실 안팎으로 분양돼왔다. 고가의 부동산상품이 분양되는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분양대행업과 관련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 ‘빌라왕’ 사기 등 소비자 피해 상시 발생 가능성

실제로 분양대행업자에 대한 부실한 관리는 전세사기와 같은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 강서구와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빌라왕’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일부 영세 분양대행업자들이 중저가 빌라 등 다세대주택 분양과정에서 건축주나 무자본 갭투자자 등과 공모해 임대보증금을 분양가와 같은 금액으로 임차인(세입자)을 모집한 뒤 임대보증금을 건축주에 분양대금으로 지급하고,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그 과정을 세분화해서 보면 3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1단계로 건축주는 건물(빌라)을 짓고, 분양하면서 분양가와 동일하거나 더 비싸게 전세매물로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분양대행업자가 개입한다.

2단계에서는 (전세금이 과도하게 책정된 사실을 모르는) 세입자가 건축주와 전세계약을 하고, 건축주는 전세금을 받은 뒤 ‘바지임대인(무자본 갭투자자)’으로 집주인을 변경한다. 이 바지임대인이 ‘빌라왕’으로 언론에 알려지는 인물로,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한다.

3단계는 이 과정에서 분양대행업자나 중개업소, 빌라왕 등은 건축주로부터 분양가의 약 1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받는다.

● 법률 정비부터 전문성 제고 위한 교육 강화 필요

입법조사처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로 분양대행업자에 대한 관리를 위한 분양대행업 및 대행업자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법적 정의를 마련해야 한다. 즉 업무 및 책임 범위 등을 명확해 해줄 관련 법률 개정이나 신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분양대행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주택건설사업자 이외에 부동산개발사업의 인허가 주체인 지자체장과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과해야 한다. 연간 수십만 명의 국민들이 막대한 자금을 지출하며 부동산의 소비자로서 분양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분양대행업에 대한 감독을 위해 분양대행업에 관한 통계체계를 구축하고, 부동산 분양대행업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장경석 국토해양팀 입법조사관은 “건전하지 못한 분양대행업체의 난립으로 전세사기와 같은 국민적 피해가 발생하고 주택시장이 혼란을 겪는 문제들이 발생했다”며 “향후 부동산 분양대행업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궁극적으로 부동산 소비자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동산 분양대행제도의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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