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법의학자로 “죽은 자의 몸과 주변에는 진실을 밝힐 ‘키보드’가 숨어 있다”고 믿는 저자는 떠도는 소문과 침묵의 현장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조사 결과 이들 가족이 숨지기 몇 주 전 입주한 이 주택은 보일러 계량기가 6년 동안 납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전 세입자가 관리비를 체납하자 집주인이 보일러에 땜질을 해버린 것. 가스 배기관은 누더기 천과 신문지로 꽉 막혀 있었다. 한겨울 배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보려 이전 세입자가 한 일이었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 뒤 부랴부랴 보일러 땜납을 제거했지만 배기관은 청소하지 않았다. 집주인의 관리 부실이 사인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담아낸 다양한 사건 현장에서 죽은 자는 온몸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책에는 토막살인, 강간, 의료 조작 등 참혹한 사건이 여럿 나오지만 진실을 좇는 과정은 묘한 위안을 준다. 저자는 “사망자가 평소에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해도, 그가 피해를 당했는지 아닌지 검증하는 마지막 단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