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점 ‘AI 심판’, 박진감 높이고 오심은 줄여[IT가 바꾸는 스포츠/정윤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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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시행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그림. 추적 카메라를 
설치해 선수별 29개 신체 부위에 걸친 위치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인구 ‘알 리흘라’에 든 관성측정장치(IMU) 센서가 보내는 
데이터를 초당 500회씩 모니터링한다. 이런 실시간 위치 추적을 통해 오프사이드 등을 AI가 가려낸다. 사진 출처 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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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시행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그림. 추적 카메라를 설치해 선수별 29개 신체 부위에 걸친 위치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인구 ‘알 리흘라’에 든 관성측정장치(IMU) 센서가 보내는 데이터를 초당 500회씩 모니터링한다. 이런 실시간 위치 추적을 통해 오프사이드 등을 AI가 가려낸다. 사진 출처 FIFA 홈페이지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스포츠평론가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스포츠평론가
2002년 뜨거웠던 여름, 포르투갈과의 8강전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수비수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했다. 오프사이드라고 생각되는 순간, 동작을 멈추라는 것. 판정을 망설이던 심판도 일제히 동작을 멈춘 선수들을 보면 반사적으로 휘슬을 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실전에서 실제로 두세 차례 그런 장면이 나왔다. 인간의 눈과 경험만으로 판정하던 20년 전에는 이런 ‘눈속임 전술’이 통했다.

오프사이드 논란 줄인 ‘AI 심판’


인공지능(AI)이 공과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해 오프사이드 위반을 판정한 그림. 이를 토대로 비디오판독(VAR) 심판이 재차 판단하고, 주심이 최종 판정을 내린다. 사진 출처 FIFA 홈페이지
인공지능(AI)이 공과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해 오프사이드 위반을 판정한 그림. 이를 토대로 비디오판독(VAR) 심판이 재차 판단하고, 주심이 최종 판정을 내린다. 사진 출처 FIFA 홈페이지
지금은 어림도 없다. 오프사이드라는 판단이 들더라도 수비수는 일단 무조건 달려가서 막고 봐야 한다. 설령 골이 터져도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Semi-Automated Offside Technology)’이 시시비비를 가려주니 결과는 그때 가서 기다리면 된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처음 시행된 이 시스템의 기본 인프라는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12개의 추적 카메라. 카메라는 각 선수의 관절, 손끝, 발끝 등 무려 29개의 신체 부위에 걸친 위치 데이터를 초당 50회씩 분석한다. 공인구 ‘알 리흘라’에 장착된 ‘관성측정장치(IMU) 센서’도 초당 500회씩 공의 움직임과 위치를 판단한다. 이 ‘첨단 심판’은 발끝이라도 오프사이드 라인을 넘어가면 여지없이 잡아낸다. 인공지능(AI)의 판단 기술이 접목된 이 시스템 덕에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짧은 탄성이 있을 뿐, 경기는 지체 없이 속개된다. 경기를 끊고 최소 1, 2분은 기다려야 했던 애매한 오프사이드 판별이 20초 안팎으로까지 줄어들었다. SAOT가 사실상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축구의 역사는 시간의 확장과 공간의 확대를 위한 역사다. 1863년 영국에서 근대 축구가 출범할 때만 해도 부분적으로 공을 손에 들고 뛸 수 있었다. 또 키가 크거나 골 결정력이 높은 선수를 상대편 골대 바로 앞에 박아 넣으면 만사형통이었다. 그러나 1925년 ‘공격수와 상대방 골라인 사이에 상대 수비수가 2명이 안 되면 오프사이드’라는 규정이 생겼다. 이 위치에 있는 공격수가 후방에 있는 동료가 보낸 패스를 받으면 오프사이드가 선언된다. 하지만 공격수와 수비수의 위치가 찰나에 바뀌기 때문에 위반 여부를 놓고 오심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어쨌든 오프사이드 제도는 축구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 놨다. 모든 팀으로 하여금 ‘저 빈 공간을,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덫)을 어떻게 뚫느냐’에 골몰하게 만들었다. 단조롭고 우직했던 스포츠, 축구에 상상력과 박진감을 더했다. 단 1초 전만 해도 무의미했던 공간은 오프사이드 트랩이 무너지는 순간, 골을 향한 가장 뜨거운 경로로 전환됐다. 땅 위에 그려진 고정된 선이 아닌, 늘 생동하는 오프사이드 라인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전쟁터이자 최전선이 된 것이다.

경기 속도 높이기 위해 새 규칙들 도입

축구라는 생명체는 진화하고픈 속성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관건은 경기 진행 속도가 됐다. 1992년 골키퍼에게 발을 이용하여 고의적으로 패스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라인 밖으로 공이 나가면 다른 공을 쓸 수 있도록 여러 개의 공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속도를 위해서다.

축구 규정과 경기 방식을 관장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경기 속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2019년 3월 IFAB는 교체 아웃되는 선수가 가장 가까운 골라인이나 터치라인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또 골키퍼가 차는 골킥을 같은 편 선수가 페널티박스 안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바꿨다. 이렇게 개정하면서 IFAB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보다 빠르고 역동적으로 경기를 진행하자. 경기 도중 전술이 중지되는 상황을 포함하여 모든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자.” 이는 축구의 본질이 속도에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비디오 판독(VAR·Video Assistant Refree) 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SAOT까지 들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첨단 기술이 스타디움으로 들어오기까지는 반대 의견도 적잖았다. 프랑스 축구 영웅이자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미셸 플라티니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마저 한때 VAR를 “쓰레기”라고까지 폄훼했다.

그러나 현대 축구의 가속도를 높이는 것과 ‘사실’ 그 자체를 보호하는 일은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사실’, 즉 오프사이드냐, 골이냐, 페널티킥을 줄 만한 반칙이냐 하는 것은 첨단 기술에 근거하여 사실 자체로 일단 확인해야 한다. 인간이 최종 판관의 역할을 하면 될 일이다. 2005년 페루에서 열린 17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비디오 판정이 도입된 이후 우려도 있었다. 축구의 역동적인 감정이 비디오 화면을 응시하는 동안 싸늘하게 식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제 선수와 관중은 마치 승리의 여신을 외쳐 부르듯이 “VAR!”를 소리치고 주심 또한 모니터를 향해 달려간다. 잠시 경기 흐름이 끊어지는 듯싶지만 ‘사실’을 확인하려는 그 순간은 유무죄를 가리는 법정의 순간처럼 긴장의 적막이 흐를 뿐, 결코 축구의 흐름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관전의 새로운 재미가 된 IT


기술을 활용해 팩트는 물론 재미까지 보완하려는 이런 흐름은 축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첨단 기술이 활약하고 있다. 첨단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의 프로배구 V-리그에서는 방송 중계 화면을 통한 비디오 판독을 2007년부터 시행 중이다. 세계 배구 사상 최초 도입이다.

물론 기술이 전부는 아니다. 9월 7일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경기에서 해프닝이 있었다. 득점 판독 시스템인 ‘호크아이’의 오작동으로 당연한 득점이 인정되지 않아 제조사가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오작동뿐 아니라 인간 심판의 개성이나 가치관 역시 결정적 순간에 종종 논란을 일으킨다. 지난달 28일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 대 가나 경기의 앤서니 테일러 심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10여 초의 추가 시간을 불인정할 수도 있다. 논란이 늘수록 더욱 첨단의 기술은 경기장으로 진입할 것이고 인간의 오류와 실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기술은 마냥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다. 기술이 경기를 지배할 수도 없다. 결국 공을 차고 달리는 것은 인간이며 땀과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인간이다. 그 속도와 그 미학과 그 고결한 땀과 눈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혁신의 기술은 경기장으로 더 들어올 필요가 있다. 어쩌면 새 기술은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전술 패러다임을 촉진해 경기의 숨은 재미를 찾아내고 결국 우리를 게임에 더욱 열광하게, 몰입하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스포츠평론가
#ai 심판#오프사이드 판독#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관전의 새로운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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