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이 전부였던 소년, 드럼과 함께 세상 속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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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 ‘온 더 비트’ 리뷰
작년 ‘오프 아비뇽’ 최고의 1인극상

리듬으로만 세상을 감각하는 소년 아드리앙을 연기하는 배우 강기둥이 공연에서 드럼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커넥티드컴퍼니 제공
리듬으로만 세상을 감각하는 소년 아드리앙을 연기하는 배우 강기둥이 공연에서 드럼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커넥티드컴퍼니 제공
연극이 시작되면 텅 빈 무대엔 한 소년이 의자에 앉아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점점 빨라지는 템포에 소년의 움직임 또한 민첩해진다. 오직 손과 발만을 동원한 한바탕 연주가 끝나고 나면 소년은 말한다. “드럼이 진짜 엄청난 건요, 악기가 없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서울 종로구 대학로 티오엠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온 더 비트’는 리듬만으로 세상을 읽는 소년 아드리앙(강기둥 윤나무)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1인극이다. 아드리앙은 오직 리듬을 통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을 감각한다. 농구공이 튀는 박자로 옆집 친구가 집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도마의 칼질을 통해 엄마가 부엌에 있다는 걸 안다. 텅 빈 무대에 홀로 놓인 드럼처럼 아드리앙의 세계엔 리듬만이 존재한다. 아드리앙은 단순하지만 집요하고 깊이 파고들지만 편협해지기 쉬운 인간을 상징한다.

아드리앙에게 어느 날 자신만의 드럼이 생긴다. 자신과 리듬만 존재했던 세상에 ‘외부인’이 등장한 것이다. 군데군데 터진 드럼은 이음매가 부식된 허접한 악기였지만 아드리앙은 이 중고 드럼에 점점 몰입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드럼과 함께 아드리앙의 세계에 들어온 ‘진짜 세상’이었다. 드럼과 관련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가 벌어지면서 아드리앙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무대에는 아드리앙을 연기하는 배우 1명과 드럼 세트만 있다. 배우는 아드리앙에게 벌어지는 일을 아드리앙의 입장에서 들려준다. 아드리앙의 말과 행동,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에게 연민을 갖고 공감하다가 이윽고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2003년 초연한 원작은 2016년 프랑스 몰리에르 1인극상 후보, 지난해 오프 아비뇽 페스티벌 최고의 1인극상을 수상했다. 내년 1월 1일까지, 전석 5만5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인극#온 더 비트#오프 아비뇽#1인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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