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이온가속기 ‘라온’… 세상에 없는 원소 만들어 우주기원 밝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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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개 중 5개 첫 시험 가동 성공, 선진국 맞먹는 기초과학 기술 확보
두 개의 원소 생성 방식 동시에 사용
주기율표에 없는 희귀 원소 제작… 우주-의료-신소재 분야서 활용
정상 운행에 필요한 실험장치 갖춰… 내년 3월에 모든 장치 시운전 목표

위쪽 사진 속 가속장치는 입자를 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지난달 7일 이 가속장치를 활용한 첫 빔 인출에 성공했다. 아래쪽 사진은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전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위쪽 사진 속 가속장치는 입자를 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지난달 7일 이 가속장치를 활용한 첫 빔 인출에 성공했다. 아래쪽 사진은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전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지난달 7일 오후 3시 3분 한국의 중이온가속기 ‘라온’이 첫 빔 인출 시험에 성공했다. ‘단군 이래 최대 과학사업’으로 불린 라온이 당초 계획보다 4년 늦었지만 첫 시험 가동에 성공한 것이다. 권면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은 “우리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한 가속장치가 성능 확인 단계에 돌입했다”며 “가속장치 성능뿐 아니라 극저온 시스템 등 필수 기반 장치들과 연계한 성능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15일 처음 공개된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 내부를 직접 돌아봤다. 대전 유성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내에 위치한 연구소에는 약 952만 m²의 면적으로 이온을 발생시키는 입사기, 입자를 가속시키는 가속장치, 가속에 필요한 극저온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극저온 시스템, 이 구성장치들을 제어하는 중앙제어시스템 등의 장치가 구축돼 있다. 주기율표상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찾아내 우주 탄생의 근원을 연구하기 위한 장치다. 찾아낸 원소는 암 치료 등 의료 분야나 신소재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 기초과학 경쟁력 잣대 ‘중이온가속기’
중이온가속기는 기초과학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불린다. 미국은 5월부터 중이온가속기 ‘에프립(FRIB)’ 가동에 들어갔으며 일본은 RIBF 가속기, 중국은 IMP 가속기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설계상 가장 높은 수준의 성능을 자랑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높은 성능을 보이는 FRIB과 유사한 수준이다.

중이온가속기는 전자를 가속시킬 때 회전운동으로 나오는 빛인 ‘방사광’을 이용하는 방사광가속기, 양성자를 큰 에너지로 가속시켜 표적 물질에 충돌시킨 뒤 2차 입자를 소재 연구에 활용하는 중입자가속기와는 다른 개념이다. 물질의 크기는 분자, 원자, 원자핵, 양성자, 쿼크순으로 작아지는데 방사광가속기는 원자 수준까지, 중이온가속기는 원자핵, 양성자까지, 입자가속기는 쿼크 수준까지 분석할 수 있다.

라온은 세계 최초로 두 종류의 원소 생성 방식을 동시에 사용한다. 가벼운 이온을 무거운 표적 원소에 충돌시키는 ‘아이솔(ISOL)’과 무거운 이온을 가벼운 표적에 충돌시키는 ‘아이에프(IF)’ 방식을 결합했다. ISOL로 생성한 원소를 가속장치를 거쳐 재가속한 후 IF 방식으로 더욱 희귀한 원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속장치는 길이가 106m에 이른다. 총 54개 가속 모듈로 구성됐다. 실제 가속장치가 마련된 장소에 들어서자 모듈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달 첫 빔 인출 실험은 54개 중 5개만 가동됐다. 홍승우 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소장은 “자동차로 치면 1단 기어를 넣고 저속주행 시험에 성공한 것과 같다”고 했다. 권 단장은 “미시세계를 연구하는 도구들”이라며 “한국도 이제 방사광가속기를 넘어 중이온가속기까지 확보했다”고 말했다.
○ 아직은 미완 상태… 2024년부터 본격 연구 돌입
라온은 아직 미완 상태다. 지난해 12월 ISOL 시스템, 입사기, 극저온시스템 등의 구축을 완료했지만 IF 시스템을 포함해 뮤온스핀공명 장치, 동축레이저분광학 장치 등 각종 실험장치가 아직 설치를 완료하지 못했다.

가속장치 역시 저에너지 구간만 완성됐다. 가속장치는 저에너지와 고에너지 구간으로 나뉜다. 고에너지 구간은 2025년까지 필수 요소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2단계 라온 사업을 통해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라온 구축사업은 2011년 시작돼 지금까지 약 1조5183억 원이 투입됐다. 당초 사업 완료 목표 시점은 2017년이었지만 수차례 시점이 늦춰졌다. 이런 부침을 겪은 끝에 이번에 첫 빔 인출 시험에 성공한 것이다.

연구소는 내년 3월 총 54기의 저에너지 가속장치 시운전을 목표로, 가속시험 구간을 단계적으로 늘려 전체 시운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2024년부터는 본격적인 빔 활용 연구에 돌입한다. 홍 소장은 “내년 3월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저에너지 전체 구간 빔 시운전도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2단계 구축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이온가속기
희귀 동위원소를 찾아내고 핵입자물리학 기초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연구시설이다. 입사기에서 중이온을 발생시키고, 전기장을 이용해 중이온을 빛 속도 50%까지 가속한 후 표적 물질에 충돌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세상에 없는 원소가 생겨난다.



대전=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중이온가속기#라온#가속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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