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널’ 실존 인물, 18년간 살았던 파리공항서 숨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3일 1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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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AP 뉴시스
파리=AP 뉴시스
공항 터미널에 갇혀 장기간 생활한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2004)’의 모티브가 됐던 인물이 프랑스 파리 공항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미국 워싱턴포스트(WP), CNN 등에 따르면 이란 출신의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는 12일(현지 시간) 파리 샤를드골공항 제2터미널에서 숨을 거뒀다. 나세리는 1988년~2006년까지 18년간 이 공항에 머물렀다. 그는 2006년 공항을 떠나 요양원에 머물다 올해 9월 다시 공항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45년 이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7년 이란에서 왕정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여권 없이 추방됐다고 주장해왔다.

이란에서 추방된 나세리는 벨기에 등지에서 10년 가까이 살며 유럽 각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1986년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은 뒤 프랑스 파리를 거쳐 영국 런던으로 입국하려 했으나 난민 관련 서류를 분실해 불허됐다. 나세르는 다시 파리로 돌려보내졌고, 프랑스 경찰은 그의 국적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추방하지 못했다. 1988년 8월, 나세르는 벨기에로 돌아가는 대신 파리 샤를드골 공항 제1터미널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는 ‘알프레드 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공항 직원과 승객들 사이에서 유명인이 됐다. 터미널 내 빨간 플라스틱 벤치에서 잠을 잤고, 공항 직원들의 도움으로 직원 시설에서 샤워를 했다. 나세리는 일기를 쓰거나 공항에 비치된 잡지를 읽고, 지나가는 여행객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1999년 프랑스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공항에 계속 머물렀다. 공항 직원들은 그가 공항에 장기간 머물며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 의료진은 “그가 (공항에서) 화석이 되었다”고 했고, 매표소 직원은 그를 ‘외부에서 살 능력이 없는 죄수’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의 변호사였던 크리스티안 부르게는 “그는 공항에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나세리는 2006년 건강 악화로 입원 치료가 필요해 공항을 떠났다.

나세리가 공항터미널에 머물며 쓴 일기를 엮어 2004년 출간한 책 ‘터미널 맨(The Terminal Man)’은 같은 해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의 원작이 됐다. 그는 판권으로 수십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관계자는 “그는 요양원에 머물다 올해 9월 중순부터 공항에 돌아와 다시 노숙을 했다”며 “공항 공동체 전체가 그에게 애착을 느꼈고 돌아온 그를 최대한 보살폈다”고 했다. 사망 당시 그의 수중엔 현금 수천 유로(수백만원)가 있었다.



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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