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깡패국가 북한의 ‘핵보유국 행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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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고 간 커진 김정은의 도발 몰아치기
韓美 틈새 없는 군사-외교 억제전략 짜야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일본 열도 너머로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9월 23일 밤. 미군 B1-B 폭격기 2대가 호위 전투기들과 공중급유기, 특수전기 등 10여 대를 이끌고 동해로 진입했다. 폭격기 편대는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한 뒤 그대로 북상해 풍계리 근처까지 동쪽 공해상을 2시간 가까이 휘젓고 다녔다. 미군의 공개 작전으론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NLL을 넘은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한 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폭격기 편대가 떼로 몰려와 북한 영공을 넘보는 상황이었는데도 전투기 대응 출격은커녕 레이더 조준조차 없었다. 북한 방공망이 작동하지 않았거나 그 위력에 놀라 그저 지켜만 봤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북한은 뒤늦게 사실상 ‘선전포고’라고 온갖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이후 두 달 넘게 미사일 도발을 멈췄다.

북한은 지난주 한바탕 도발을 벌인 뒤 ‘순항미사일 2발을 울산 앞바다에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미 정찰자산에 전혀 포착되지 않은 터라 상투적 기만전술이거나 시도했더라도 실패한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내놓은 데는 눈 뜨고 당했던 5년 전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는 북한군 수뇌부의 중압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의 도발 공세는 5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미 연합훈련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작 미군 전략자산이 전개되면 숨죽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보복’ 운운하며 겁 없고 간 큰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핵 보유의 자신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과거 도발이 개발·시험 차원이었다면 이젠 실전에의 적용, ‘전술핵 운용’ 차원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북한은 “감히 우리를…”이라며 실제 핵보유국처럼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다.

격화된 신냉전 정세도 북한의 객기를 부추겼다. 북한은 공공연히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 전술적 협동”을 들먹인다. 잇단 도발에도 대북 추가 제재는커녕 기존 제재조차 무력해지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중-러는 규탄을 할지언정 제재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제 굳이 핵실험 카드까지 쓸 필요가 있을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북한은 긴장을 최고조로 높인 뒤 대화 국면으로 극적인 전환을 꾀하곤 했다. 그런 도발-협상 패턴에 익숙한 한미 조야의 일각에선 도발의 정점 이후를 대비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워싱턴에서 북한과의 군비통제 협상론이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비핵화는 물 건너갔고 핵보유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이다.

하지만 북한은 불법으로 핵무장한, 그것도 죄질이 매우 나쁜 깡패국가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을 보유한 다른 탈법국가와 달리 핵개발을 위해 NPT에 가입했다가 불법행위가 들키자 탈퇴한 유일한 나라다. 깡패를 신사로 대접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커지는 위험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앞으로 북한을 다루는 일은 길고 고단한 여정이 될 것이다. 당장은 북한이 핵 도박을 벌이지 못하도록 군사적 억제력을 과시하면서 그 생존능력을 끊임없이 시험해 지쳐 쓰러지거나 제풀에 꺾여 대화에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억제(deterrence)의 두 축은 위협(threat)과 보장(assurance)이다. 군사적 경고와 함께 외교적 노력도 함께 가야 한다. 한미 간 엇박자가 없도록 공동의 대북 억제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한국#미국#북한#핵보유국 행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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