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물방울 그리며 기억을 지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7일 1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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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화가’ 김창열 아들 김오안 감독
“아버지는 왜 물방울을 그릴까”
다큐멘터리로 아버지의 세계 그려내

김창열 화백(1929~2021)은 ‘물방울 화가’라 불린다. 그는 1971년 ‘밤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줄곧 물방울만을 그렸다. 그의 차남 김오안(48)은 그런 아버지가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 돼야만 수십만 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예속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오안은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감독이 되어 그 답을 찾아간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스틸컷.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창열 화백의 모습. 영화사 진진 제공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스틸컷.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창열 화백의 모습. 영화사 진진 제공


26일에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두고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난 김 감독은 “아버지 작품은 아름답지만, 아름답다는 단순한 이미지가 그 깊이를 숨겨왔다”며 “그 뒤에 있는 내면의 고통, 철학의 깊이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김창열은 휴전선을 넘던 순간을 떠올리며 울음을 쏟는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겪으며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져온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방울은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운다.”

김 감독은 아버지를 여러 면모를 가진 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물방울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김 감독은 “순수한 동시에 눈물처럼 보여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고도 소멸하기 쉬운 나약한 것을 물방울이라는 단순한 오브제로 표현했다는 점이 놀랍다”고 했다.

고독한 도인 같았던 아버지에게서 “항상 비밀을 가진 느낌을 받아”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그는 “‘김창열 화백의 삶과 작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했지만 아버지라는 대상은 너무나 가깝고 커서 거리감을 조절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에 공동연출자인 브리짓 부이요 감독의 조언을 받아 아들의 시선에서 내레이션을 하며 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해간다.

김오안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김오안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는 2014년부터 5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만들었다. 영화를 시작할 무렵, 아들은 프랑스로 가 물방울 그림을 구상했던 당시 김창열과 같은 나이인 마흔살이 됐다. 어릴 적 아들에 눈에 비친 아버지는 푸근한 ‘산타클로스’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스핑크스’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남다르단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는 김 감독은 오늘날 아버지를 이렇게 추억한다.

“말수는 적었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느끼게 해준 사람. 심각하다가도 포도주를 마시면 노래를 부르던 사람.”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스틸컷. 김창열 화백의 뒷모습과 그의 작품. 영화사 진진 제공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스틸컷. 김창열 화백의 뒷모습과 그의 작품. 영화사 진진 제공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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