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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연대하는 모두가 당신의 그림자 되어 지켜줄게요”

입력 2022-08-06 03:00업데이트 2022-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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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D 지음·김수정 김영주 감수/556쪽·2만2000원·동녘
경찰서 앞에서 수없이 망설이며 돌아섰던 한 성폭력 피해자는 2010년 고소를 결심한다. 혼자였다. 가족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긴 법정 싸움 끝에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남은 건 단절된 경력과 사라진 인간관계, 악화된 신체와 정신건강이었다.

‘그때 내 옆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면.’ 저자는 4년간의 고통을 겪은 뒤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가장 암담했던 것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인 자신이 위축됐던 경험이었다. 담당 경찰은 가해자와 ‘형’ ‘동생’으로 친밀하게 지냈다.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해자가 거짓말을 해도 반박 자료를 만들어 보낼 뿐이었다.

저자는 이로 인해 연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모여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책은 힘겨운 경험을 한 후 2014년부터 시작한 저자의 연대 과정을 적은 기록물이다.

저자는 먼저 피해자와 일대일로 만났고, 수사기관에 함께 가고 재판 전략을 같이 모색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런 연대가 좀 더 폭넓게 이어지길 바랐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방법이 ‘방청연대’였다. 일반 시민들과 함께 관련 재판을 참관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그 내용을 공유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운 성범죄 관련 법률에 대한 정보와 ‘N번방 사건’ 같은 여러 범죄의 재판 방청 기록을 책에 담았다.

저자는 연대에 참여한 이들을 ‘피해자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피해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하고 문제를 해결하되, 피해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면 때로는 방향을 권하기도 하는 존재. 저자는 피해자들에게 무엇보다 생존을 권한다. 사실 ‘생존자’는 살아내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본인도 싫어했던 표현이지만,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단 살아만 있어요. 제가 당신의 그림자가 될 수 있게. 당신을 위해 길을 찾고 다듬어 당신의 손을 잡아 함께 걸을 수 있게.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더 넓고 안전한 길을 만들겠습니다.”

저자는 법률전문가도 시민운동가도 아니다. 그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다소 방만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그의 진심은 오롯이 묻어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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