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 명이 투표 못하는데 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까[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2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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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편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인 3일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을 인터뷰 했습니다. 그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2020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대선이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라 장애인 정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만났지요.

독자 여러분은 25만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사실상 투표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6년 지적장애, 자폐 등 발달장애인들도 투표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투표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4년간 시행되던 이 지침이 2020년 갑자기 삭제됐지요. 이유는 투표 보조인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헌법이 부여한 투표권은 있지만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셈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의 장애 유형은 매우 다양합니다. 판단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판단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 기표소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투표용지 접는 것을 깜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아무 지장 없이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일괄적으로 이들 모두를 싸잡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로 치부한 것입니다. 시각·신체 장애인들은 투표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어머니 도움을 받았지요. 손이 없는 장애인의 투표용지는 투표보조인이 대신 접어줄 수 있는데, 발달장애인의 투표용지를 접어주는 건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인가요?

사회적 약자들은 대규모 재난에 더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들다보니 그들의 어려움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 2년간 코로나19 때문에 투표소에서 지급한 비닐장갑을 끼고 기표를 해야 했습니다. 방역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만, 중증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비밀투표를 위해 점자 투표지는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대신 투표지 위에 덮어씌우는 얇은 종이 한 장을 주는데 여기에 점자로 후보 번호와 이름, 기표하는 파여진 홈이 있다고 하는 군요. 이 종이를 손으로 만져 기표를 해야 하는데, 비닐장갑이 손에 딱 안 맞고 손 끝에 남는 부분이 있다보니 점자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중도 실명을 한 분이나 촉감 능력이 좀 떨어지는 분들은 더 힘들었을 거라 하더군요.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어려움은 투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오미크론 확산 때문에 방역정책이 대폭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자가 검사를 해 양성이 나와야만 PCR검사를 받을 수 있지요. 이게 중증시각장애인들에게는 날벼락이 됐습니다. 점자 설명서를 갖춘 자가진단키트가 없기 때문이지요. 코에 넣었던 면봉을 시약통에 넣은 뒤. 시약통의 용액을 검사용구에 떨어트려야하는데 시각장애인은 이를 보면서 분량을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검사용구에 나타나는 선을 보고 양성 여부를 알 수 있는데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중증시각장애인들이 무슨 재주로 확인하겠습니까. 활동지원을 해주는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수시로 해야 하는 자가 검사 때마다 부를 수는 없겠지요. 무엇보다 감염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2020년 기준 등록장애인은 260만 명에 달합니다. 이 중 시각장애인이 약 25만 여명, 발달 장애인이 25만 여명 정도입니다. 200만 명에 달하는 청각, 언어 등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이 코로나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시각장애인들은 버스도 타기 힘들다고 합니다. 정류장에서 음성으로 버스번호를 알려줘도, 두 대 이상이 동시에 오면 어느 버스가 내가 타야할 1234번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차 벨과 카드단말기도 버스마다 고정된 위치가 조금씩 달라 더듬거리며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우리에게는, 우리가 받았듯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물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첨단 AI를 개발하고, 입자가속기를 설치해주고, 몇 조원을 들여 공항을 만드는 게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은, 모두가 겪는 엄청난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닐 런지요. 대선 후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후보 부인들의 무성의한 사과 기자회견이나 보고 있으니 암담합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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