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투표, 지난 대선 땐 했는데 이번엔 못해…”[이진구 기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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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김 의원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지만 일반전형으로 숙명여대 피아노과에 수석 입학했고, 2020년 전국장애인동계체전에서는 바이애슬론 동메달, 크로스컨트리 은메달을 땄다. 그는 “철인3종 경기에도 출전하려 했는데 국회에 들어오는 바람에 못 하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김 의원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지만 일반전형으로 숙명여대 피아노과에 수석 입학했고, 2020년 전국장애인동계체전에서는 바이애슬론 동메달, 크로스컨트리 은메달을 땄다. 그는 “철인3종 경기에도 출전하려 했는데 국회에 들어오는 바람에 못 하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헌법 제24조)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서민과 약자를 위하겠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25만여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사실상 투표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까.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42)은 “2020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련 지침을 삭제하면서 사실상 투표권이 박탈됐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출신인 그는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투표권을 사실상 박탈당했다니….

“2016년 선관위가 지적장애, 자폐 등 발달장애인들도 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면 투표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다. 그런데 4년간 시행하다 2020년 갑자기 투표 보조인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지침을 삭제했다. 투표권만 있지 사실상 투표를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도 신체·시각장애인처럼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을 냈는데… 대선이 코앞인데 아직도 논의가 안 되고 있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다 했다는 건데 왜 지금 와서….) “보조인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들이 영향을 안 받고 할 수 있다는데 남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우려가 있다면 보완을 해서 참정권을 확대하는 게 맞지 않을까.”

―투표소 참관인들이 도와주면 영향을 미칠 우려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개정안을 낸 거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과 양당 간사에게 이번 대선에 적용될 수 있도록 빨리 논의해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 및 사정 및 요청 등등을 드렸는데, 휴… 별로 관심이 없다.”

※발달장애인들이 투표 시 겪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혼자 기표소 안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투표용지 접는 것을 잊기도 한다. 의사결정과는 무관한 경우다.

―당신도 지난 총선에서 투표 보조를 받았다고.

“평소 같으면 혼자 했을 텐데 지난 총선이 중요하다 보니….” (출마했으니까?) “하하하, 다른 때와 달리 정당 간 간격이 너무 좁아서 어머니께 정확히 찍었는지만 봐 달라고 했다. 잘못 찍거나 무효 처리되면 안 되니까.”

※2020년 21대 총선은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개에 달해 용지 길이는 역대 최장인 48.1cm, 정당 간 칸 간격은 2mm에 불과했다.

―투표용지가 너무 긴 데다 간격도 좁아 투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 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얇은 종이 한 장(투표보조용구)을 주는데 거기에 점자로 후보 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고, 기표하는 부분은 홈이 뚫려 있다. 이 종이를 투표용지 위에 정확히 맞추고 손으로 짚어 기표를 한다. 그런데 2020년 총선 때도 그랬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은 비닐장갑 때문에 지장이 많을 것 같다.”

―방역상 끼는 비닐장갑에 문제가 있나.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손가락이 짧아서 딱 맞지 않고 손끝에 공간이 남았다. 우리는 점자와 홈을 만져야 투표를 할 수 있는데, 손끝에서 남는 비닐이 돌아다니니까 많이 힘들었다. 실명한 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나, 촉각이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지장이 클 것 같다.”

―선거만 힘든 건 아닐 것 같은데.

“시각장애인들은 뭘 많이 만져야 하니까…. 이제는 자가 검사를 한 뒤에 양성이 나와야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바뀐것도 걱정이다.” (혼자서는 검사가 힘들 것 같은데.) “활동 지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시간 제약도 있고, 지금 검사할 거니 당장 와 달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설사 시간이 돼도 감염 우려 때문에 요청할 수 있을까? 저시력 장애인은 어떻게 한다 해도, 저처럼 완전히 안 보이고, 또 혼자 사는 분들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점자 설명서를 갖춘 자가진단키트는 없다. 콧구멍에 넣었던 면봉을 시약통에 넣은 뒤, 시약통의 용액을 검사키트에 떨어뜨려야 하는데, 시력의 도움을 받기 어려우니 손끝 힘으로만 분량을 조절해야 한다. 검사키트에 점자가 없으니 혼자서는 양성 음성 여부를 알기도 어렵다.

―발의한 법안들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성격이 좀 순한 편인가.

“왜 그런 생각을?” (100건이 넘는데 대부분 안 지켜도 벌칙이 없더라. 점자법 개정안도 그렇고.) “법을 지키는 이유가 규제와 벌금 때문이라면 그건 너무 1차원적이지 않을까?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자발적으로 지키는 게 좋고, 그게 더 오래간다고 생각해서….”

※점자법 개정안은 점자 문서 제공을 요구받은 공공기관 등이 제공 실적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장관은 이를 국회 소관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2020년 11월 통과됐다.

―점자 문서 제공을 의무화했는데도 법원조차 점자 프린터가 없다고 안 주지 않나.

“나도 기사를 봤는데 법원조차 법이 정한 걸 제공하지 않았다는 데 깜짝 놀랐다. 그래서 장관에게 제공 실적을 보고하게 하면 지키지 않을까 싶어 개정안을 냈던 거다.” (기계가 법원이 부담 될 정도로 비싼가?) “400만∼500만 원부터 하는데… 공공기관이 못 살 가격도 아니지만 굳이 살 필요도 없다. 지역마다 점자도서관이나 시각장애인 복지관이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여기에 요청하면 된다. 점자 문서 요청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없는 거지.”

※2019년 시각장애 1급인 A 씨가 법원에 점자판결문 교부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재판 관련 문서가 일반 활자라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 법원은 점자 기계 미비를 이유로 제공하지 않았다.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한 세심함이 부족한 부분이 꽤 있을 것 같은데.

“음… 시각장애인들은 갤럭시보다 아이폰을 많이 쓴다. 볼 수 없으니까 음성지원 기능이 필수인데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갤럭시는 이용하기 좀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다. 기능이 있기는 한데 자신의 장애 상태에 맞게 설정해 쓰는 과정이 여의치 않다고…. 그래서 나도 아이폰을 쓴다. 사과 그려진 회사가 사용자 접근성에 대한 배려가 더 세심한 것 같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갤럭시도 다양한 손쉬운 조작 방법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폰처럼 사용자 요구에 따라 입력 방식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한다.

―댓글을 음성으로 들으면 상처가 더 클 것 같은데.

“어휴… 장난 아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기사만 보고 댓글은 안 본다. 전에 요즘은 어떤 악플이 트렌드인가 한번 알아보고 싶어서 봤다가….” (욕은 표기가 안 되는데.) “그래서 숫자로 대신 쓰거나 ㄱㅅㄲ 이렇게 자음만 쓰는 사람도 있는데, 보다 보면 한편으로 좀 웃기기도 하다. 안 써지는 걸 알면서 저렇게까지 저 말을 쓰고 싶었을까 싶어서. 그 노력과 의지가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ㄱㅅㄲ은 어떻게 읽어주나.) “그냥 똑같이. 댓글이 ‘이진구 ㄱㅅㄲ’ 이러면 ‘이진구 기역 시옷 쌍기역’ 이렇게.”

―혹시 의원이 되고 안 좋아진 게 있나.

“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졌다. 롯데마트 건도 그렇고 시각·청각장애 안내견 출입을 막는 곳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안내견 출입을 환영하는 식당들을 찾아서 사장님 소개를 하는 식으로 칭찬 릴레이 유튜브 영상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누가?) “선관위가. 지역구 의원은 자기 지역만 벗어나면 할 수 있는데, 비례대표는 전국이 지역구라 공직선거법상 안된다는 거다. 아직은 적지만 설명서에 점자 표기를 해주는 의약품, 화장품 회사들이 있다. 그런 착한 기업도 유튜브를 통해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안 된다더라.” (그건 또 누가?) “선관위….” (다음에 또 출마할 것도 아니지 않나. 너무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은데.) “아닌데도….”

―조이가 우리 사회의 안내견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괜찮은가.

“괜찮다는 게 무슨 말인가.” (사람도 여의도 오면 이상해지니까.) “하하하, 아직까지는. ‘국개의원’이라 그런지 나보다 적응을 더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얘가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특이하게 어떤 의원들에 대해서는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혹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누구나 계단을 오를 수 있고, 누구나 복잡한 공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도 헌법이 보장하는 선거권을 부여받았고, 당연히 이를 행사할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감이 아닌 배려로만 보장되고 있는 장애인 참정권은 아직 반쪽입니다.”

(김예지 의원)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시각장애 피아니스트#발달장애인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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