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착한 기업 콤플렉스’ 벗어나 ESG를 브랜드 차별화 기회로 [광화문에서/김창원]

입력 2022-01-21 03:00업데이트 2022-01-21 10:25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도브라는 비누 브랜드로 국내에 잘 알려진 유니레버는 세계에서 존경받는 소비재 기업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면서도 적잖은 수익을 내는 이 회사는 글로벌 리더십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유니레버는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경쟁사인 P&G에 1위 자리를 내주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위기에 빠진 이 회사는 2009년 긴급 소방수로 파울 폴만이라는 P&G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스카우트했다. 2019년까지 유니레버 CEO를 맡은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영은 하나’라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에 나서 판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세계 아동 손 씻기 캠페인은 유니레버의 대표적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활동이다. 손만 자주 씻어도 질병으로 사망하는 아이들을 줄일 수 있다는 이 캠페인으로 유니레버는 소위 ‘개념 있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나아가 유니레버는 손 씻기 캠페인을 제품 연구개발(R&D)을 통해 비즈니스로 연결했다. 위생을 고려하면 흐르는 물에 30초는 씻어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30초는 너무 길뿐더러 물 낭비도 심하다는 문제를 혁신의 출발로 삼았다. 유니레버는 10초 만에 세균 99.9%를 제거하는 비누를 개발해 아동의 건강과 회사 수익을 동시에 거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비즈니스와 연계한 유니레버의 전략은 깨끗한 물 마시기 캠페인과 정수 필터 개발, 친환경 캠페인과 물 절약 헹굼 세제 개발 등 다양한 조합으로 전개됐다.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은 상충하는 게 아니라 함께 달성돼야 한다”는 폴만 전 CEO의 ESG 경영 사례는 국내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ESG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평가가 인색하다. 일각에서는 ‘좀처럼 체감하기 힘든 그들만의 ESG 성과’라거나 ‘많은 돈을 들이고도 가장 소수한테 읽히는 보고를 위한 ESG 보고서’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나쁘게 보이면 안 된다는 기업들의 ‘착한 기업 콤플렉스’에서 소비자들이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기업의 ESG 활동이 리스크 관리와 좋은 성적표 받기 위주의 소극적 방어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기존 ESG를 넘어 지속 가능한 삶을 원하는 소비자 가치에 부합하는 ‘ESG2.0’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마침 팬데믹으로 소비자들의 ESG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은 ESG1.0에서 맴도는 국내 기업들에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등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논문 ‘ESG가 실패하는 경우’에서 “사회적 필요를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충족할 수 있을 때 자본주의의 마법이 실현된다”고 했다. 도덕교과서에 갇힌 기업들의 ESG 활동은 공허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적 혁신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시대다. 기업들이 ESG를 경쟁사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차별적 경쟁 요소로 삼아 새로운 비즈니스의 돌파구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시장 창출은 사회에도 기업에도 모두 이롭다.

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changkim@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