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면서 감추기’[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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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처음 사용하려고 하다가 곧 접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묘하게 부담스러웠습니다. 바지런한 편이 아니어서 계속 무엇이든 올려야 하는 일도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시대를 거스르는 느낌이나 어쩔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살겠다는, 몇 해 전 다짐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분석을 받으려면 자유연상이라고 하는, 그 순간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버릇을 들여야 원활하게 진행됩니다.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의 약속이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습니다. ‘자유’라는 말과 달리 자유롭지 않습니다. 분석가에게 은밀하게 하는 이야기지만 수치스럽거나 죄스러우면 제동이 걸려 감추려고 합니다. 피분석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유연상에서 벗어나면서 저항합니다.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침묵으로 버티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말이 물 흐르듯이 거침이 없어도 의미 있는 내용이 없는 일상적인 사건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열심히 늘어놓는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생각은 감추려는, 저항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겁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분석가는 당황하면서 애를 먹습니다. 경험이 쌓인 분석가는 능숙하게 대처합니다. 피분석자가 드러내는 저항을 우선 다루면서 어떤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지를 탐색해 냅니다.

21세기는 좋아도, 좋지 않아도 사회 관계망 서비스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시대입니다. 이용자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사회 관계망에 올리는 글은 짧아서 쓰기가 용이하고 전파도 쉽습니다. 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쉽게 쓰고 금방 읽습니다. 신문, 잡지, 책에 쓰는 글과 달리 글의 내용을 확인하고 고치고 편집하는 중간 단계도 없어 독자적이면서 즉각적인 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자신이 올린 글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피는 재미와 보람도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의도한 바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생각, 판단,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단점도 꽤 있습니다. 느리게, 생각을 거듭하고, 쓰고 나서 숙성시켰다가 고쳐내는 글이 아닌, 급하게, 때로는 충동적으로 쓰는 글이어서 실수하거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습니다. 꼼꼼하게 고치지 않은 글은 늘 후회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미 많이 읽혔다면 삭제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 관계망에 올린 글은 충분히 연습하지 않고 무대에 올라간 배우와 같아 늘 불안합니다.

언제나 접속된, 잠들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어도 쓸쓸합니다. 완벽하게 홀로 있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같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일상을 올려 공개해도 외로움이 극복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소통의 주체인 듯싶지만, 남의 선택을 받아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홀로 남겨진 느낌이 힘들어서 분별을 잃고 끊임없이 접속하면 지치게 됩니다. 사회 관계망에만 의존하면 자율적인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세운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하는 타인 지향의 삶으로 변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변하고 있는지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합니다. 사회 관계망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이기도 하기에 스스로 다른 사람의 삶과 섞는다면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정체성 혼돈에 빠집니다. 외적 관계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내적 성찰의 기회는 줄어듭니다.

글에는 쓴 사람의 생각, 느낌, 의도는 물론이고 성격도 담깁니다. 사회 관계망에 올린 글은 짧아서 특히 의미가 명쾌합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늘 글이나 말에서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숨깁니다. 행간에 숨은 의미도 있으나 처음부터 빼놓아 숨긴 의도도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새로 판매할 차량의 시험 운행을 하면서 정보 노출을 막으려고 위장으로 가리면서 착시 효과도 유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착시가 아닌 착각을 노린다는 점입니다.

이미 사회 관계망은 정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올라오는 글에 포함된 전략은 자기 자랑, 상대 공격, 자기 방어입니다. 의도가 노출되는 수준을 영리하게 조절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사회적 소음을 일으킵니다. 대면 소통과 달라서 그렇게 되면 글을 내려도 파장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감성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올려 소음을 덮으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는 21세기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요즘 돌아다니는 글이나 말은 그냥 쓱 읽거나 들어도 의도가 너무 뻔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보여도 보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정 지지자들은 ‘공개된 비밀’인 진실을 알아도 절대로 언급하거나 논의하지 않습니다. 우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학력, 나이, 재력, 외모, 이념과 같은 틀에 가두고 공격합니다.

몰라도 위험합니다. 조종당하는 삶을 속아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묘한 방법에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도 넘어가기 쉽습니다. 종속되지 않으려면 글과 말에서 소리와 소음을 구별하면서 감추고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애쓰면 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보여주기#감추기#사회 관계망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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