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이 쇼호스트… 강원도서 주문받고 앱 결제… 시장의 ‘환골탈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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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디지털 전통시장]서울 양천구 신영시장
생중계-온라인 판매-모바일 결제… 디지털 3종세트로 시장 한계 극복
물건 파는 상인은 설명의 달인… 유튜버와 짝 이뤄 판매대회까지
온라인 주문 받으니 전국서 밀물… 90대 할머니도 스마트폰 결제

24일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에서 이 시장 상인(왼쪽에서 두 번째)과 유튜버(왼쪽)가 짝을 이뤄 시장 물건을 파는 ‘신영시장 쇼호스트 대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김동용 상인회장(오른쪽)과 이인선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장(가운데)이 지켜보고 있다(큰 사진). 신영시장 상인(작은 사진 가운데)이 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방송에 나와 시장 물건을 홍보하는 모습이 스마트폰 화면에 담겼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신영시장 제공
24일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에서 이 시장 상인(왼쪽에서 두 번째)과 유튜버(왼쪽)가 짝을 이뤄 시장 물건을 파는 ‘신영시장 쇼호스트 대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김동용 상인회장(오른쪽)과 이인선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장(가운데)이 지켜보고 있다(큰 사진). 신영시장 상인(작은 사진 가운데)이 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방송에 나와 시장 물건을 홍보하는 모습이 스마트폰 화면에 담겼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신영시장 제공
“신영시장이 반(半)세기를 점프했다.”

서울 양천구에 있는 신영시장 상인들이 하는 말이다. 내세울 ‘핵(核)점포(유명 점포)’도 없는 전통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전통시장 디지털역량 사업에 참여한 신영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손님이 뚝 떨어졌다. 곤경에 빠진 신영시장을 바꾼 것은 라이브 커머스, 온라인 판매, 모바일 결제라는 ‘디지털 3종 세트’였다.

○ 특정 점포가 아닌 신영시장 물건

“하하하.”

지난해 9월 21일 신영시장 문화센터에서 시중은행 은행장들과 ‘중소기업금융지원위원회’회의를 하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웃었다. 김동용 상인회장이 라이브 커머스(라이브 쇼핑 방송)를 이원 생방송으로 해보겠다고 했을 때였다. 이 웃음은 몇 분 뒤 상인을 만나는 박 장관 모습이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시장 TV에 실시간으로 나오자 경탄으로 바뀌었다.

신영시장 라이브 커머스는 유명 유튜버나 연예인이 아니라 상인이 쇼 호스트를 맡아 주도한다. 서툴긴 하지만 하면 할수록 상인들은 배짱과 자신감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물건을 꼼꼼하고 재미있게 설명하게 됐다.

쇼 호스트를 할 때는 자기 가게 이름은 말하지 않고 다른 상점 물건들도 소개한다. ‘○○가게’ 양파, ‘△△상점’ 닭 강정이 아니라 ‘신영시장 양파’ ‘신영시장 닭 강정’이다. 이인선 신영시장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장은 “디지털로도 골고루 질 좋은 장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것이 전통시장 디지털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이브 커머스는 매주 하다가 올해는 한 달에 한 번 하고 있다. 유튜브와 네이버 쇼핑 라이브서부터 그린라이브 더라이브 같은 소규모 라이브 커머스에도 나온다. 콘셉트도 ‘1인 가족이 2만 원으로 일주일 버티기’ ‘핼러윈 특집’ ‘코로나 이기는 복날은 온다’ 등 시의적절하게 맞춘다. 조회수는 30∼300 정도지만 지난해 12월 네이버 쇼핑 라이브 때는 한 상점 매출이 10배로 뛰었다. 쇼 호스트로 나선 ‘옛날한과’ 손미경 사장은 명절에 50, 60개 나가던 한과세트를 지난 추석에 130개나 팔았다.

24일 신영시장에서는 쇼 호스트를 맡은 상인 7명이 유튜버와 짝을 이뤄 1만 원대 시장 물건을 누가 잘 파는지 겨루는 ‘쇼 호스트 대회’를 열었다. 내년에는 상인 개개인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계획 중이다.

○‘딩동’ 주문 소리에 기분이 ‘업’

“이상한 일이네…. 강원도 고성에서 주문이 들어왔어.”

오태철 ‘남부건어물’ 사장이 어느 날 고개를 갸웃했다. 건어물 고장이라 할 강원도에서 건어물을 주문하다니?

신영시장은 중기부 사업에 참여해 이지웰, 온누리몰 같은 쇼핑몰에서 전국 배송을 할 수 있게 됐다. 남부건어물은 자신들이 파는 121개 제품 전부를 올려놨는데 코로나19로 온라인쇼핑을 하던 고성에서 보고 황태채를 주문한 것이다. 이 점포는 단돈 5000원어치를 사도 구운 김, 미역, 땅콩 등을 서비스로 보낸다. 오 사장은 “아무 생각 없이 하나라도 팔면 좋겠다고 올렸는데 신기했다”며 “온라인 판매는 보너스나 덤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영시장 110여 개 점포 가운데 22곳은 네이버 쇼핑 장보기에 상품을 올린다. 이지웰 등에서 전국 배송하는 상점도 지난해 4곳에서 올해 11곳으로 늘었다. 이들은 매출의 20∼30%를 온라인 판매로 올린다.

온라인 판매 역시 상인 주도다. 50, 60대 상인들이 스스로 상품 사진을 찍어 올린다. 어떻게 하면 물건을 더 노출시킬 수 있을까, 서비스는 무엇이 좋을까, 포장은 어떻게 개선할까를 고민한다. ‘옛날한과’는 개당 7000원을 들여 황색 종이박스를 색동 한지로 된 팔각상자로 바꾸고 보자기로 쌌다. 한 야채 가게는 파 한 단을 주문해도 상인이 직접 쓴 감사편지를 동봉한다. 스마트폰에서 ‘딩동’ 하는 주문 벨소리가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손님과 실랑이를 벌일 필요도 없으니 감정 소비도 덜하고 우울감도 사라진다.

온라인 판매를 위한 각종 서류 작업은 난관이다. 다른 시장에서는 통신판매신고증을 만들 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 낼 서류는 나름대로 간소화됐지만 쇼핑몰 플랫폼 회사에 요구하는 자료는 여전히 많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지” 한다. 상인이 진화하면서 시장도 변화했다.

○ 할머니 손님도 모바일 결제

“상인이 모바일 결제를 편하게 생각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협조한다.”(김동용 상인회장)

매주 토요일은 ‘모바일 결제의 날’이다. 이날 3만 원 이상을 구매하면 5000원짜리 모바일 상품권이나 쿠폰을 받는다. 농활상품권 등 모바일 상품권을 잘 활용하면 최대 60%를 할인받을 수 있다. 통계를 내보니 모바일 결제 행사 매출의 63%는 카드 사용이었다. 그런데 모바일 결제(26%)가 현금(11%)을 앞섰다. 김 상인회장은 “내년에는 모바일 결제 비율을 50%까지 높이겠다”며 “10년 뒤면 모바일이 카드를 뒤집을 것”이라고 했다.

모바일 결제 혜택을 설명하면 ‘카톡을 쓸 줄 아는’ 고객은 그냥 못 지나간다. 70, 80, 90대 할머니도 한다. 폴더폰을 쓰던 한 할머니는 자식에게 얘기해 스마트폰으로 바꾸기도 했다.

상인들은 바쁜 와중에 고객이 알아서 앱으로 결제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장으로서는 젊은층이 유입되고, 기존 고객은 더 찾아 더 많이 쓰도록 할 수 있다. 회계 처리도 투명해졌다. 전통시장 디지털화는 여전히 먼 길이다. 정부 지원도 필요하고 포털 등 대기업 협력도 절실하다. 그러나 들어선 길을 돌이킬 수는 없다.

“전통시장 상인의 삶은 365일 같은 패턴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변화에 직면했다. 가야 할 길이고 살길이다.”(김수자 애플N치킨 사장)

“사업 그림 그려놓고 색칠은 나중에… 입점할 플랫폼 더 많아졌으면”
디지털화 이끈 상인회장-사업단장


서울 신영시장 디지털화를 이끄는 김동용 상인회장과 이인선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장은 “웬만하면 도전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입을 모은다. 뜻하지 않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뛰어든 길이었기에 디지털화의 전체 그림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디지털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내용을 다 알았다면 아마 힘들어서 못했을 거예요. 저랑 이 사업단장은 원을 그려놓고 상황을 봐가며 색칠하는 식이었죠. 미흡하다면 방향을 바꿔 보고,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했습니다.”(김동용 상인회장)

두 사람은 매주 토요일 모바일 결제의 날 행사에 참여한 손님들이 결제 방법, 거주지, 성별과 나이를 적도록 해서 물품대장을 작성했다. 전통시장 빅데이터다. 김 상인회장은 “지금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만학도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사업단장은 전통시장 디지털화 성공을 위해 대기업과의 상생을 강조했다. “대형 포털 초기화면 메뉴에 ‘소상공인전통시장’ 카테고리를 넣어준다면 시장 상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고객과 쉽고 빠르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정부는 더 다양한 플랫폼에 입점시켜줬으면 좋겠고요. 전통시장의 손을 잡아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끌고 가주는 일이지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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