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드러난 ‘IT 후진성’… 日, 디지털청 설치로 반전 노려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1-08-26 03:00수정 2021-08-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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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왼쪽)와 히라이 다쿠야 디지털개혁담당상이 지난해 9월 도쿄 도라노몬의 한 사무실에서 열린 ‘디지털 개혁 관련 법안준비실’ 출범식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디지털청은 세계 3위 경제대국임에도 디지털화가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의 디지털 개혁을 주도할 임무를 맡았다. 아사히신문 제공
박형준 도쿄 특파원
《3월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서 시나가와구로 이사한 기자는 새 구청에 전입신고를 할 때 “4월 고쿠호(國保·국민건강보험)를 다시 내라”는 안내를 받았다. 미나토구에 거주할 때 이미 4월까지의 보험료를 납부했지만 이사를 했으니 새 구청에 다시 내야 한다고 했다. 중복으로 낸 보험료를 돌려받으려면 과거 구청에 계좌정보 등을 적은 신청서를 보내야 했다. 번거로웠다.》

이처럼 일본에서 이사를 하면 새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감등록, 아동수당,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마이넘버 등에 적히는 주소 변경 신청을 일일이 해야 한다. 강아지를 키우면 강아지 등록주소까지 바꿔야 한다. 시나가와구청 직원에게 전입신고 한 번으로 모든 행정 처리를 끝낼 수 없는지를 문의하니 “지자체별로 전산 체계가 달라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불편은 2025년 말에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그때까지 각 지자체의 정보 체계를 표준화, 단일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디지털청’이 이 작업을 진두지휘한다. 세계 3위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게 디지털화가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이 디지털청 발족을 계기로 달라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디지털 후진국’의 민낯

일본인 사토 마사루(佐藤勝) 씨가 사용하는 4개 도장. 왼쪽부터 인감인 지쓰인(實印), 은행 거래용 긴코인(銀行印), 일반 사무용 미토메인(認印), 택배 수령용 간이 도장 샤치하타(シャチハタ)다. 많은 일본인이 3, 4개 도장을 용도별로 만들어 사용한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일본이 얼마나 디지털에 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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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 때 각 지자체는 감염자 수를 팩스로 집계했다. 먼저 의료기관이 보건소에 팩스를 보내면 보건소는 다시 지자체에 팩스로 보고했다. 정보 수집의 기본 체계가 팩스이다 보니 집계 속도가 느리고 누락, 중복 보고 사례 등이 비일비재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8월에야 ‘허시스(HER-SYS)’란 정보체계를 만들어 각 의료기관이 직접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백신 접종도 문제가 많았다. 중앙정부는 접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도쿄와 오사카에 대규모 접종센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인터넷 신청 때 중복 접수를 걸러내지 못했고, 허위 정보를 입력해도 접수됐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기업의 재택근무 또한 원활하지 않았다. 특유의 ‘도장 문화’가 발목을 잡았다. 대부분 기업에 전자서명 체계가 도입돼 있지 않아 직원들이 상사의 결재 도장을 받으려면 사무실로 일일이 출근해야 했다. 지난해 재택근무 경험자 5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도장 날인을 위해 재택근무 중에 출근했다”고 답했다.

일본의 도장 문화는 뿌리가 깊다. 특히 메이지 정부가 1873년 공식 서류에 인감을 찍도록 규정하면서 이후 148년간 모든 행정, 기업 업무에 도장이 필수적으로 쓰이고 있다. △구청에 등록을 한 인감 지쓰인(實印) △은행 거래에 사용하기 위해 은행에 등록한 긴코인(銀行印) △일반 사무에 사용하며 공적 증명의 효력은 없는 미토메인(認印) △택배를 받을 때 사용하는 간이 도장 샤치하타(シャチハタ) 등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도장도 다양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지난해 9월 취임 직후부터 ‘탈(脫)도장’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각계에서 반발이 상당했다. 결국 법무성은 희망자에 한해 행정문서에 도장을 계속 찍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횡적·종적 칸막이가 문제

일본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부터 행정의 전자화를 목표로 했다. 2001년 시행된 정보기술(IT)기본법에 기초해 ‘e-Japan 전략’이 마련됐고 당시 ‘5년 이내 세계 최첨단 IT 국가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2013년 ‘세계 최첨단 IT 국가 창조선언’도 했다. 계획대로라면 일본은 이미 최첨단 IT 국가가 돼 있어야 한다.

정부부처 간 밥그릇 싸움을 뜻하는 ‘횡적 칸막이’, 정부와 지자체 간 공조 부족을 의미하는 ‘종적 칸막이’가 이를 가로막았다. 호적 제도가 대표적이다. 1930년대 중일전쟁 때 일본은 식량 배급을 위한 거주자 파악용으로 가구 대장을 만들었다. 1967년 이를 없애고 주민기본대장을 만들면서 담당 부처를 법무성에서 자치성(현 총무성)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호적 관리는 법무성에 남겼고, 명부 관리만 자치성에 맡겼다. 그 후 각 부처가 별도로 전산체계를 정비하면서 주민기본대장 관련 호적 및 명부 자료가 부처 간에 공유되지 않았다. 개별 부처 또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까 봐 정보체계 통합에 소극적이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손발도 잘 맞지 않는다. 일본에선 자신의 주소지가 아닌 지역에서 인감증명 등 행정 서류를 발급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약 1700개의 지자체가 주민정보, 지방세 징수 등 각종 자료를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 또한 디지털화에 목매지 않는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개인정보가 새나갈 것이라고 우려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마이넘버 사용 확대를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보급률이 35%에 불과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저서 ‘흐름의 한국, 축적의 일본’(2018년)에서 “일본은 한 곳에 오래 소속돼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축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그 덕분에 기술과 지식, 자본 축적을 이룰 수 있었지만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필요로 하는 디지털 정보통신기술 산업에서는 약점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스가의 최고 현안

스가 총리는 지난해 9월 집권 당시부터 줄곧 디지털청 설치를 언급했다. 이에 따라 올해 5월 디지털개혁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집권 1년을 맞는 다음 달에는 디지털청까지 출범한다.

일본에서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새로운 부처가 생기는 것은 아주 드물다. 총리가 워낙 의욕을 보이는 바람에 정부와 집권 자민당 모두 디지털 관련 업무를 소위 ‘스가 안건’으로 분류해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덕을 봤다. ‘실용’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있는 스가 총리에게 인터넷으로 모든 행정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사회는 이상향에 가깝다는 평이 나온다.

스가 총리는 과거 정권의 디지털 개혁 실패를 거울삼아 디지털청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우선 내각 직속으로 설치해 자신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렸다. 정부 각 부처의 디지털 관련 사업 및 예산 또한 디지털청이 담당한다. 500명 규모의 디지털청 인원 중 약 100명은 민간에서 뽑는다.

자민당의 7선 의원 출신인 히라이 다쿠야(平井卓也) 디지털개혁담당상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의 손과 종이에 의존하는 일본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은 ‘디지털 패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시절인 2018년 정보통신기술정책담당상으로 처음 입각했다. 스가 총리가 이 명칭을 디지털개혁담당상으로 바꿨다. 과연 히라이 담당상이 이끄는 디지털청은 일본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후진성#코로나19#일본#디지털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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