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끝없는 오디션”…잊혀진 아이돌이 다시 날기까지

히어로콘텐츠팀 입력 2021-07-24 03:00수정 2021-07-2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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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끝〉 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
어렵게 데뷔한 뒤에도 늘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이돌의 숙명이다. 쉼 없이 진화해야 하지만 선택지는 넓지 않다. 솔로 가수가 되거나 드라마, 뮤지컬 배우로 진로를 바꾼다. 이 역시 인기가 얼마나 더 유지될지 보장되지 않는 길이다. 16년 전 ‘오디션 스타’로 데뷔해 앨범 3장만 남기고 무대를 내려가야 했던 아이돌 가수가 있다. 일본의 무명 밴드로 다시 시작해 대학로 소극장을 거쳐 유명 뮤지컬의 주연으로 빛나기까지 ‘부러진 날개’로 날았던 그의 13년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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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공연을 마친 뒤 부모님이 계신 본가를 찾은 진태화. 거실에는 가수 시절은 물론 그가 이제껏 출연했던 뮤지컬 속 모습이 담긴 액자가 놓여있다.
오디션 1위→잊혀진 아이돌→뮤지컬 배우… “삶은 끝없는 오디션이네요”


소녀시대 태연, 샤이니 온유, 엑소 카이…. 이솔림 SL스튜디오 대표는 2003년부터 아이돌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숱한 스타의 탄생을 봐왔다. 그런 이 대표도 아이돌은 ‘천운’이 따라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외모와 실력이 좋아도 아이돌이 되는 건, 본인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운명적인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 대표는 ‘아이돌 고시’란 말이 붙을 정도로 꿈을 이루는 아이보다 상처받는 아이들이 더 많은 현실을 부모들에게 솔직히 알린다. ‘우리 아이가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얼마 전 옛 제자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SL 스튜디오 명예에 걸려있는 진태화의 사인. ‘꿈을 이룹시다!!’라는 응원이 적혀있다.

“16년 전에 ‘배틀신화’라고, 당시 아이돌이었던 신화가 ‘제2의 신화’를 만드는 오디션 방송에서 1등을 한 제자가 있어요. 그런데 그 제자가 잘 안 풀렸어요. 군대 다녀와서 뮤지컬 배우 하다 이번에 ‘위키드’ 남자 주인공이 됐다고 해서 공연을 보고 왔어요. 처음 봤을 때 애기였던 애가 벌써 서른셋이더라고요. 소속사도 없이 혼자 오디션 봐서 대형 뮤지컬을 한다는 게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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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신화 오디션 당시 포스터.


○ 스타덤은 잠시, 곧 이어진 ‘멀고 험한 길’


이 대표가 말한 옛 제자 진태화는 열일곱 살에 스타덤에 올랐다. 2005년의 일이다. 그해 6개월간 방송된 오디션 ‘배틀신화’에서 그는 부동의 1위였다. 데뷔하기도 전에 팬카페에 2만 명 가까이 모였다. 진태화는 오디션에서 최종 6인에 뽑혀 ‘제2의 신화’로 데뷔할 기회를 얻었다.

무대 위에 선 진태화는 수상 소감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데뷔해서 신화 형들을 꼭 따라잡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러자 진태화 옆에 서 있던 ‘신화’의 민우가 애정을 담아 쓴소리를 했다.

“지금 선택됐다고 가수가 된 건 아닙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니까 저희가 많이 도와드릴 거고. 결코 순조롭게 가수 생활을 하진 못할 겁니다. 혹독한 훈련 잘 견뎌서 제2의 신화라는 소리 듣게 저희가 응원하겠습니다.”

아이돌 그룹 배틀 활동 당시 진태화(가운데). 동아일보DB.


그 후로 16년이 지난 올해 4월 취재팀은 서울 잠실의 한 카페에서 진태화를 만났다. 진태화에게 당시 ‘배틀신화’ 무대에서 말했던 소감을 다시 들려주자 진태화는 “‘따라가겠다’가 아니고 ‘따라잡겠다’고 그랬어요? 미쳤었네”라며 웃었다.

당시 오디션에서 우승한 뒤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았던 성공은 오지 않았다. 데뷔는 계속 미뤄지다 프로그램이 끝난 지 1년이 지난 2006년 말 ‘배틀’이라는 이름으로 6명이 데뷔했다. 오디션의 열기는 이미 식어 있었다.

민우가 예고한 대로 ‘멀고 험한 길’이 펼쳐졌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슈퍼주니어(2005년), 빅뱅(2006년) 같은 남자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배틀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미니앨범 3집을 끝으로 다음 앨범이 나오지 못했다. 지친 멤버들은 군대에 갔다. 배틀은 사실상 해체됐다. 진태화는 스무 살이었다.

배틀 3집 ‘step by step’ 시절 진태화. 이 앨범은 배틀의 마지막 앨범이 됐다.


○ 무대가 있다면 어디든
“그룹이 해체되고 스트레스가 정말 컸어요. 아무 생각이 안 들었어요. 뭐 해야 하지? 거길 계속 두드려야 되나? 배운 게 이건데.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인데 뭐하지….”

진태화는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 할 일이 없었다. 다른 회사를 알아보던 중 참석하게 된 연예인 축구팀에는 아이돌을 하다 쉬고 있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한 동료로부터 일본에서 5인조 그룹 활동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일본 회사에서 J팝 신인으로 데뷔하는 기획이었다. 당장 일본어부터 배워야 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 계약을 기다릴 시간에 지금이라도 일본에 가서 무대에 서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에 결심이 섰다.

일본 그룹 M.E.N 시절 팬이 선물해 준 데뷔 1주년 축하 앨범.


일본에서 진태화가 속한 그룹은 수많은 인디 그룹 중 하나였다. 처음엔 스무 명 남짓한 관객 앞에서 노래를 했다. 그래도 데뷔 후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한국 아이돌 그룹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전까지는 돈을 거의 못 벌지만 일본에선 그룹 멤버들에게 월급을 줬다.

그는 이때 부모에게 처음으로 용돈을 드렸다. 어머니 홍은경 씨는 그때 받은 엔화를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지 않고 아들 통장에 모아뒀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첫 오디션 프로그램 포스터부터 음악방송 큐시트, 일본활동 시절 사진까지 아들의 모든 추억을 보관하고 있다.


“아들이 고생할 때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어요. 제일 힘든 건 본인이니까. 그런데 제가 그 돈을 어떻게 써요.”

○ 성공한 아이돌도 피할 수 없는 ‘불안한 미래’


아이돌의 생명이 실패한 그룹에만 짧은 것은 아니다. 성공하더라도 소속사와의 7년 계약이 끝날 즈음이면 아이돌로 활동하기에 나이가 많거나 남자의 경우 군 입대를 더 미루기 어려워진다.

소속사가 재계약을 하면서 그동안 인기를 얻어 ‘갑’의 위치에 선 아이돌 멤버가 내미는 조건을 맞춰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룹 안에서도 인기가 많은 멤버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멤버들과 원하는 것이 달라진다. 스케줄은 빡빡한데 수익은 나눠야 하는 아이돌 그룹 활동 대신에 배우 등 다른 진로를 택하는 경우도 많다. 대다수의 아이돌은 진태화처럼 아이돌 이후의 삶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의경 홍보단 시절 모습.

진태화는 일본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팬들을 보며 더 버텨보고 싶었다. 하지만 군 입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는 일본 활동 1년 만에 의경 홍보단에 입대했다. 약 2년간의 복무 후 전역이 다가오면서 또다시 진로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 축구단 활동으로 평소 친분이 있던 김준수(시아준수)가 뮤지컬을 권유했다. 김준수는 진태화가 타지에서 다시 바닥부터 가수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진태화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그룹의 메인 보컬 특색이 중요했거든요. 저는 ‘음색은 좋은데 색깔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런데 준수 형이 ‘가수로서는 단점인데 뮤지컬에서는 오히려 네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진태화는 2015년 대극장 뮤지컬 ‘드라큘라’ 오디션을 준비했다. 연습한 수록곡을 녹음해 김준수에게 ‘검사’를 받고 다시 연습하길 반복했다. 오디션 며칠 전 축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졌다. 목발을 짚고 오디션장에 갔는데 제작사 대표가 그런 모습을 “열정이 있다”고 평가해줬다. 진태화는 첫 작품에서 조연을 따냈다.

“주변에서는 ‘대극장 작품으로 데뷔했네’라고 하는데 저는 허전했어요. 뮤지컬은 관객분들이 10만 원 넘는 돈을 내면서 나를 보러 오도록 만들어야 하잖아요. 소극장 공연을 하면서 내실 있게 성장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소극장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대학로에서 탄탄하게 입지를 쌓은 배우들에게 계속 밀렸다. “그때 제 인생의 바닥을 본 것 같았어요. 주변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막상 6개월 동안 오디션을 보는 족족 떨어졌어요. 멘털이 완전히 무너졌죠.”

반년 만에야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캐스팅됐다. 한 번 소극장의 문을 열자 두 번, 세 번은 좀 더 수월했다. 소극장에서 진득하게 실력을 쌓자고 생각해 지난해 8월 소속사에서도 나왔다. 그러던 차에 글로벌 유명 뮤지컬인 ‘위키드’ 오디션 소식이 들려왔다. 남자 주인공 ‘피에로’ 역에 지원해 합격했다. 혼자 힘으로 따낸 첫 대극장 주연이었다.

뮤지컬 위키드 넘버 ‘나를 놓지마(As Long As You’re Mine)’를 열창하고 있는 피에로 역 진태화(왼쪽)와 엘파바 역 손승연. 〈위키드〉 2021 프로덕션 제공.


○ 어깨 위 문신 “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 배워라”
부모님의 집 거실에 장식된 진태화가 이제껏 출연한 작품 속 모습.
2006년 데뷔한 배틀 멤버 중 진태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대 밖에서 삶을 꾸려간다. 연기 레슨을 하거나, 카페를 운영하거나, 건설업으로 방향을 튼 멤버도 있다. 진태화는 무대에 남는 대신에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기로 했다. 뮤지컬 무대 역시 유명 작품의 주연을 했다고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계속 무대에 서려면 제작사에서 먼저 찾는 배우가 되거나 오디션으로 계속 배역을 따내야 한다.

아이돌 그룹 배틀 출신 뮤지컬 배우 진태화

뮤지컬에 도전하려던 무렵, 진태화는 오른쪽 어깨에 “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을 배워라)”라는 문신을 새겼다. 비틀스의 명곡 ‘블랙버드(Blackbird)’의 한 구절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저는 항상 차악까지는 생각을 하거든요. 무대에서 노래할 때 너무 행복하긴 하지만 항상 불안함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에요. 원하는 대로 되면 좋은데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아이돌 시절부터 뮤지컬 배우가 된 지금까지, 무대에 남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다 이렇게 말했다.

“제 인생이 오디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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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기사 취재: 김배중 임보미 위은지 기자

▽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기자

▽그래픽·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편집: 홍정수 기자

▽프로젝트 기획: 이샘물 이지훈 기자

▽사이트 제작: 디자인 이현정, 퍼블리싱 조동진 김하나, 개발 최경선 박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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