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 빌라 24% ‘깡통전세’… “돈 떼일 위험 알면서도 대안없어 계약”

정순구 기자 , 이새샘 기자 , 김호경 기자 입력 2021-07-13 03:00수정 2021-07-1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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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3법 후폭풍 1년]〈상〉치솟은 전셋값에 깡통전세 급증
아파트도 빌라도 참 많은데 왜 자꾸 멀어지는 걸까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와 빌라촌의 모습.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전세 가격이 오히려 전국적으로 급등했다. 아파트에서 밀려난 서민들이 전세금을 떼일 가능성이 높은 ‘깡통빌라’를 택해야 하는 상황도 늘어나고 있다. 뉴스1

치솟는 전셋값… 수도권 빌라 3채 중 1채 ‘깡통 전세’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백지화… 現정부서 부동산 규제 철회 처음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강모 씨(45)는 8월 계약 만료 후 빌라로 이사하기로 했다. 새 임대차법에서 보장한 계약갱신권 덕에 2년 더 살 걸로 기대했지만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통보했다. 처음엔 같은 단지 내 전세를 구하려 했지만 2년 전 2억 원대였던 전세 가격이 2배로 뛰어 포기했다. 전세 2억7000만 원짜리 빌라를 겨우 구했지만 이번에는 전세금이 매매가와 비슷한 점이 걸렸다. 빌라가 경매에 넘어가면 전세금을 날릴 수 있다.

수도권 빌라 3채 중 1채는 전세보증금이 매매가 수준 이상인 ‘깡통 전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말 임대차 3법 도입으로 아파트에서 촉발된 전세난이 다세대, 연립주택 등 빌라로 확산된 데다 무주택 서민들이 전세금을 떼일 위험까지 커진 것이다.

동아일보가 1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토대로 수도권에서 매매와 전세 거래가 모두 이뤄진 빌라 3만2592채의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1∼6월) 수도권 빌라 31%는 전세 가격이 매매가와 같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깡통 전세 비율은 2019년 13.4%에서 지난해 16.9%로 증가한 뒤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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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세가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 아파트에서 밀려나 수도권 빌라로 향하는 ‘도미노 전세난’이 심해진 결과다. 통상 깡통 전세는 집값 하락기에 늘지만 임대차 3법 영향으로 이상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월세 전환으로 임대료를 감당하기 벅찬 사람들이 경기 인천 등의 비(非)아파트 전세로 밀려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재건축 조합원이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 동안 해당 단지에 살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규정을 백지화했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가 철회된 것은 처음이다.

서울 빌라 24% ‘깡통전세’… “돈 떼일 위험 알면서도 대안없어 계약”
서울 강동구 천호동 신축 빌라에 전세로 사는 직장인 이모 씨(35)는 요즘 경기 하남시까지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금을 3000만 원 올려주지 않으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통보한 뒤부터다.

이 씨가 이사를 결심한 건 3000만 원 증액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집주인의 요구대로 하면 전세금이 매매시세와 같은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잘못될 경우 전세금을 잃을 수도 있는 ‘깡통 전세’로 계약할 순 없어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하남시 전세도 이미 많이 올라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 전세가격이 매매가 넘는 빌라 수두룩


동아일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올 상반기 매매와 전세 실거래가격이 함께 신고된 빌라들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31%가 ‘깡통전세’ 수준이었다. 상반기 수도권 깡통전세 비율은 서울이 24.4%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경기는 33%, 인천은 40.4%에 이르렀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A빌라 전용면적 39m²는 올해 3월 말 보증금 2억7500만 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같은 날 매매계약이 체결된 빌라 가격은 2억7500만 원으로 전세 보증금과 같았다. 두 달 뒤인 올해 5월 초에는 이 빌라의 같은 면적 가구에서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전용면적은 39m²로 같았지만 전세보증금은 3억4000만 원으로 2개월 전 매매가(2억7500만 원)보다 6500만 원 비쌌다.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의 80%를 넘는 ‘위험 전세 빌라’로 범위를 좀 더 넓혀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이런 빌라를 ‘위험 물건’으로 분류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수도권 전역의 빌라 중 위험 전세는 8086곳(60.6%)에 달했다. 지난해(48.6%)와 2019년(45%)에는 40%대였던 비중이 올해 들어 급등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준공 2∼3년 내 신축 빌라는 대부분 반전세나 월세가 많아 전세 매물이 나오면 보증금이 비싸도 가계약금을 먼저 보내려는 신혼부부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며 “뒤늦게 매매가격을 알고 후회하거나 가계약금을 날리고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 돈 떼일 위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입주


깡통전세는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높다. 하지만 당장 들어갈 집이 없는 무주택자들은 이를 알면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특히 신혼부부나 청년 등 처음 전세 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선택지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직장인 손모 씨(32)는 올해 초 예정됐던 결혼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내년 2월로 미뤘다. 신혼집 찾기를 보류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세금으로 잡아둔 3억 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치솟았다. 직장과의 거리를 감안해 강동구와 성동구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지은 지 5년 넘은 빌라만 구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연말이면 전셋값이 더 오를 것이란 걱정에 미리 신혼집을 알아보는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 말에 전셋집을 구할 걸 그랬다”고 토로했다.


빌라는 거래가 뜸해 매매가격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빌라 시장에서 깡통전세 거래가 특히 위험한 이유다. 아파트와 달리 면적이 워낙 다양하고 거래 사례 자체가 적어 중개업소 등이 주변 빌라 거래 사례와 비교하며 매매가를 제시하면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계약 만료 때 만약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면 세입자가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세보증보험 가입 신청을 받을 때 매매가격을 넘는 전세금은 보증해주지 않는다. 경매로 넘어가도 문제다. 대항력을 갖춘 세입자가 있으면 낙찰자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해 여러 차례 유찰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낙찰가가 낮아지면 세입자가 우선 변제권이 있더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급격히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현 상황을 해결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게 더 문제라고 우려한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공급을 늘리고 있지만 실제 입주까지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 오히려 청약 대기자들이 기존 전셋집에 눌러앉으며 수급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장에 남은 전세 매물도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집주인들이 보유세 및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월 임대료로 전가시키면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높은 전셋값에 계약한 빌라 세입자들은 지금 당장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2년 후, 4년 후 계약 종료 시점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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