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12년 만 정권교체…새 총리 앞길 험로 예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4일 0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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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자신의 총리 승인 투표를 위한 크네세트(의회) 총회에 참석한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신임 총리 후보. 2021.06.13 [예루살렘=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자신의 총리 승인 투표를 위한 크네세트(의회) 총회에 참석한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신임 총리 후보. 2021.06.13 [예루살렘=AP/뉴시스]
이스라엘서 12년 2개월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두 차례 걸쳐 15년 2개월 재임한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72)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자칭 ‘이스라엘서 가장 미움 받을 사람’ 나프탈리 베네트 극우정당 ‘야미나’ 당대표(49)가 새로 총리직에 올랐다. 그가 이끄는 야미나는 전체 120석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의석 중 6석을 들고도 정치적 협상을 통해 총리 배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가뜩이나 취약한 지지기반이 벌써부터 이탈할 조짐이 보이고 극우 정치인이라는 베네트의 태생적 한계 탓에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연합정부를 제대로 이끌 수 없을 것이란 회의론이 초반부터 불거진다. 13일 의회 연설에선 야권 정치인으로 물러나게 된 네타냐후가 “나는 이전에 두 차례나 정권을 되찾아왔다”이라며 우파 세력을 결집해 연정 붕괴에 나선다고 밝힌 것도 큰 부담이다.

● 반네타냐후 연정 가까스로 과반 집권
타임즈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크네세트는 13일(현지 시간) 오후 특별 총회를 소집해 연정 승인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다. 13개 의석 배출 정당중 8개 정당이 연합해 꾸려진 ‘반(反)테나냐후’ 연정 세력은 60석 찬성표를 얻어 4년 임기 차기 정부 구성권을 부여받았다. 이날 아랍계 정당 라암 소속 의원 1명이 기권해 119석 의석을 대상으로 투표가 이뤄졌다. 이스라엘은 의회 과반 구성 세력이 집권해 정부를 구성한다.

지난달 연정 구성 합의 때 정해진 대로 베네트 대표가 4년 중 첫 임기 2년을 총리로 재직하고, 이후 중도정당 ‘예시 아티드’(17석)를 이끄는 야이르 라피드 대표(58)가 남은 임기 총리로 부임하는 순번제 총리제가 적용된다. 양 대표는 총리직을 맡지 않는 기간엔 외교장관직을 맡는다.

반네타냐후 연정 승인이 이뤄지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올해 3월 총선서 가장 많은 의석(30석)을 확보한 집권여당 리쿠드당과 네타냐후 총리가 레우벤 리블린로부터 연정 구성권을 먼저 부여받았지만, 과반 세력 확보에 실패했다. 결국 의회 2번째 다수당 ‘예시 아티드’ 라피드 대표에게 연정 구성권이 넘어갔다. 이후 라피드가 베네트와의 물밑 협상을 거쳐 지난달 연정 합의가 성사됐다. 극우부터 중도, 좌파, 아랍계가 연대하는 ‘무지개 연정’의 형태다.

해당 연정엔 양 정당 외에도 청백당(중도·8석), 야미나(극우·7석),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우파·7석), 노동당(좌파·7석), 뉴호프(우파·6석), 메레츠(좌파·6석), 라암(아랍계·4석 중 3석 참여)이 합류했다. 이중 아랍계 정당 라암을 제외하고 27개 장관직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연정 참여 합의가 이뤄졌다. 라암에선 장관직을 배출하진 않았으나. 차기 정부서 향후 5년간 아랍계 범죄 예방 등에 25억 세켈(8578억 원) 투입을 보장받는 등 아랍 지역 재건을 위한 예산을 대거 확보했다.

● 시작부터 ‘공공의 적’ 된 베네트

“나는 이제 이스라엘서 제일 미움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베네트 총리가 지난달 연정에 합류키로 결정한 뒤에 자신의 자녀들에게 한 말이다. 베네트가 채널12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 말대로, 연정 초반부터 그는 ‘공공이 적’이 됐다.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승인을 전제로 한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고, 대팔레스타인 강경책을 고수해온 극우성향 정치인 베네트를 두고 좌파와 아랍계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여기에 기존 극우 성향 지지층마저 베네트가 자신의 주장과 달리 좌파와 손을 잡았다며 등을 돌리고 있다. 베네트가 이끄는 극우정당 야미나는 3월 의회 총선서 7석을 배출했지만, 이날 연정 투표서 베네트의 연정 합류에 반발해 의원 1명이 반대표를 던지고 이탈한 탓에 6석만 연정에 합류했다. 또 다른 아랍계 정당 ‘조인트 리스트’(6석)는 네타냐후 실각을 환영한다면서도, 반네타냐후 연정도 ‘또 다른 우익’이라며 의회서 반대표를 던졌다. 당초 전원 연정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던 아랍계 정당 라암에서도 의원 1명이 기권표를 던졌다.

사실상 첫 총리 행보에서도 베네트는 큰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13일 연정 승인을 앞두고 치러진 크네세트 총회 연설서 베네트가 연단에 서자 우파 리쿠드당 뿐만 아니라 핵심동맹인 극우 성향 초정통파(하레디) 의원들이 ‘사기꾼’, ‘범죄자’라며 고함을 지른 탓에 연설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친네타냐후 세력은 베네트가 네타냐후 총리의 보좌관으로 정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그동안 아랍계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존재감을 키웠으면서 네타냐후와 우파 세력을 적으로 돌렸다며 비판한다.

유대교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난 베네트는 네타냐후와 마찬가지로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 ‘사예레트 마트칼’에서 복무했고 2006¤2008년 리쿠드당 소속 네타냐후의 수석보좌관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네타냐후 정부서도 경제부,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령에 대한 강도 높은 억압 정책을 정부에 촉구하며 차츰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다가 2018년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한 무장정파 하마스에 대한 강경책을 펼치겠다며 국방장관직까지 요구하다가 네타냐후와 관계가 멀어졌다.

네타냐후는 2019년 11월 리쿠드당 주도 연정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당시 극우 정당을 이끌던 베네트가 야권에 합류하지 않도록 국방장관직에 앉히는 등 뒤늦게 당근책을 제시했으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5월 청백당과 새 연정이 성사되자 베네트를 연정에서 배제했는데, 알자지라는 이를 두고 “네타냐후가 베네트와 관계가 틀어졌음을 보여준다”라고 분석했다. 올 3월 총선이 끝나고도 네타냐후는 다시 베네트에게 순번제 총리직의 후반기 임기를 보장하는 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엔 베네트가 거부했다.

● 야권 거물된 네탸냐후, 연정 붕괴 노린다
네타냐후 전 총리는 1996~1999년에 이어 2009년부터 다시 총리직을 맡아서 장기 집권하다가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가 총리로 재임한 기간만 총 15년 2개월에 이른다. 이번 실각으로 인해 최대 정치 위기를 맞은 가운데서도 네타냐후 전 총리는 반네타냐후 연정 붕괴를 노리면서 다시 총리직에 복귀하겠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13일 이스라엘 크네스트 총회 연설서 “집권 기간 동안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에 가까워지는 성과를 거뒀으며, 아브라함 협정(지난해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 바레인과 맺은 평화협정)도 이스라엘 안보 수준을 높인 업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집권한 지난 10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최고의 안보를 누렸다”면서 “현 연정 세력은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세계적인 공조를 받을 만한 입지도 능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아랍계와 좌파와 연대한 반네타냐후 연정 세력이 안보관이 뚜렷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자신이 장기집권하며 전세계에 걸쳐 확보한 인적 네트워크와 영향력에 베네트 총리 경험이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네타냐후는 최근 이란과의 핵합의(JCPOA)를 복원하려는 미국 측이 이스라엘에 공개적으로 이란 비판을 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베네트가 미국의 압박을 견뎌내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나는 이미 야권서 두 차례에 걸쳐서 정권을 탈환한 적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베네트 총리로선 안보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와 우려를 극복하는 한편, 내부적으론 연정에 합류한 좌파 및 아랍계를 다독이는 과제가 놓여져 있다. 그는 이달 초 연정 합류 세력인 라암 지도자 만수르 압바스에 대해선 그동안 테러 활동 지원자라고 비판하던 것을 멈추고 “이스라엘을 위해 일할 사람”이라며 치켜세웠다. 이스라엘 내 아랍계에 대해선 주로 교육과 집단 거주지역에 대한 병원 설립 등 인프라 관련 사업 예산은 지원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자치령내 정착촌 문제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외교 무대에선 네타냐후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안보관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공동의 적’인 이란에 대해선 한동안 기존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네트 총리는 13일 미국의 이란 핵합의 복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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