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일제강점기 시대상, 노래로 재현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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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음악 복원하는 ‘인천콘서트챔버’
음원-악보도 없어… 탐사하듯 복원, 고증과정서 ‘양키두들’ 유래 밝혀내
희로애락 담은 옛 노래 100곡 발굴, CD 출시… 9월 LP판으로도 선보여

인천 제물포 일대에서 불리던 옛 음악 15곡을 발굴해 음반으로 제작한 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가 5일 인천 개항장문화지구 내 근대건축물에서 근대음악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인천 제물포 일대에서 불리던 옛 음악 15곡을 발굴해 음반으로 제작한 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가 5일 인천 개항장문화지구 내 근대건축물에서 근대음악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근대 개화기 때 인천에 들어온 서양음악의 겉모습만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작품 속에 투영합니다. 음악은 단순히 문화의 일부가 아닌, 그 자체로 문화입니다.”

30, 40대 단원 10명으로 구성된 ‘인천콘서트챔버’는 아코디언, 풍금, 작은북,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근대 종교음악, 애국창가, 유행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다룬다. 이들은 근대음악 발상지인 인천에서 구한말∼일제강점기에 불리던 음악을 재현하는 작업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시곗바늘을 130여 년 전으로 되돌려 옛 음악을 발굴하는 일은 음원이나 악보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아 마치 고고학자들의 탐사작업과 비슷하다. 인천콘서트챔버를 이끌고 있는 타악기 연주자 이승묵 씨(36)가 음악 발굴 작업을 이끌고 있다.

이 씨는 “제물포항 개항 이후 1885년 아펜젤러, 언더우드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 종교음악이 소개되고, 이어 한국어 찬송가가 만들어졌다. 이를 토대로 창가가 곧이어 창작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2015년 8월 인천콘서트챔버를 창단했다. 서양문물의 관문 역할을 한 제물포항 주변에서 탄생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음원이나 악보를 구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활동하던 윤심덕 김용환 같은 유명 대중가수의 음원만 있지 인천 관련 작품의 악보나 음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서관이나 온라인 검색을 통해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은 뒤 음악사 연구가, 역사학자 등을 만나 고증작업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1882년 인천에서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을 때 음악 연주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했다. 이 씨는 “조약 체결 당시 미국 국가는 있었으나 조선의 국가가 없어 양 국가 대신 미국 남북전쟁 때 불리던 ‘양키두들’이란 노래를 불렀다”며 “음반에 소개한 ‘양키두들’이 한국에서 불린 최초의 외국곡”이라고 소개했다.

인천콘서트챔버는 그간 100곡가량의 옛 노래를 발굴했다. ‘양키두들’을 포함해 ‘여호와의 용상 앞에’ ‘바랴크’ ‘제물포애국가’ ‘대한제국애국가’ ‘경인철도가’ 등 15곡을 2월 CD음반으로 선보인 데 이어 LP판(9월 출시 예정)으로도 제작 중이다. 제물포애국가는 1896년 독립신문에 소개된 제물포 주민 전경택의 애국가 작사 기사를 참고해 창가 선율에 맞춰 재현된 곡이다. 악보가 없기 때문에 독립신문에 있는 가사를 토대로 재창작된 것이다. 경인철도가 같은 대부분의 곡이 이런 방식으로 재구성됐다. 다만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호와 똑같은 이름의 ‘바랴크’는 수군의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러시아에서 아직까지 불리는 노래를 번안했다.

이들은 음원 발굴 과정에서 어린 시절 인천 신흥초등학교(당시 아사히소학교)에 다니던 일본인 고가 마사오를 주목하게 됐다. 이 씨는 “일본 엔카의 대가인 고가 마사오가 자서전에서 ‘한국 음악 때문에 나의 음악이 완성됐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1932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주제곡을 일본풍인 ‘아리랑의 노래’라는 곡으로 편곡도 했다”고 전했다.

인천콘서트챔버는 발굴한 근대음악을 거리뿐만 아니라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아트플랫폼 등 여러 무대에서 온·오프라인 형태로 공연하고 있다. 또 학교, 공공기관, 기업, 문화단체 초청으로 학생, 시민을 대상으로 공연을 접목한 근대음악 강연도 펼치고 있다. 이 씨는 “첫 CD음반을 자비로 발매했지만 인천시 지원으로 두 번째 음반을 만들고 있다”며 “1930∼50년대 인천 용동에서 활동했던 기생조합(권번) 출신 이화자라는 예인(기생)의 취입작품 ‘어머님 전상 백’ ‘화류춘몽’ 등 9곡을 담으려 한다”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구한말#일제강점기#시대상#노래#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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