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한’ 이준석에게 드리운 짙은 그림자

신동아 입력 2021-06-06 12:59수정 2021-06-0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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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뷰파인더㊲] 자비심 없는 ‘공정한 경쟁’
● 성취와 능력 부각하는 세계관
● 우연과 행운에는 말을 아끼다
● 자신이 얻은 기회는 당연하다?
●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공감 부족
●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은 없다
● 부풀어 오른 자의식과 포퓰리스트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5월 30일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 연설회에서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졀ф졀ф
필자는 1983년생이다. 20대부터 소위 ‘청년 논객’으로 살아왔다. 30대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그놈의 ‘청년’ 딱지가 떨어지지 않는다. 나이를 안 먹어서가 아니라, 우리 세대에 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단지 젊다는, 동년배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박수를 치며 지지의 뜻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생각해볼 게 많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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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라는 이름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면 네 권의 책이 나온다. 출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 2011년 12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치에 첫 발을 디딘 후 2012년에 출간한 ‘어린놈이 정치를?’이 첫 번째 책이다. 같은 해 ‘거침없이 배우는 LINQ’라는 컴퓨터 서적을 번역 출간한 그는, 한동안 방송 및 정치 활동에 전념하다가 2018년 소설가 손아람과의 대담집인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를 펴냈다.

이 글에서는 그의 가장 최근작인 ‘공정한 경쟁’을 통해 그의 세계관, 그 중에서도 ‘공정 담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공정한 경쟁’에는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묻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 제목과 부제 모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준석은 진지하게 ‘산업화 세대 이후의 보수’를 고민하고 있다. ‘여는 글’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젊은 세대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엉덩이 밑에 깔린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설령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의 구성원이라 해도, 후속 세대가 자신만의 길을 모색한다는 말을 할 때, 나쁘다고 하거나 반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준석이 생각하는 새로운 아젠다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아젠다는 ‘공정 사회’로 보고 있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공정의 가치를 지금의 집권 세력은 잘못 해석하고 있고, 공정과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허덕이고 있다.”

‘공정’ 담론은 2019년과 2020년의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주제였다. 가령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 출간된 이준석의 책이 공정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점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정치인이 펴낸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니다. 어디서도 트집 잡히지 않도록 하나마나한 소리를 두루뭉술하게 돌려서 말하고 있지 않다. 좋게 말하면 인상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황당한 대목이 여럿 등장한다. 심지어 본인도 그러한 내용이 논란의 대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자 마이클 센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시피 공정성을 앞세운 능력주의 담론은 현 체제 속에서 경쟁에 이긴 사람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담론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내재적 약점이다.

그래서 능력주의의 옹호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내가 지금껏 거둔 성공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물론 나는 힘들게 노력했지만, 나처럼 좋은 여건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처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늘 노력중이다. 능력주의가 제대로 발휘되는 공정한 사회를 지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준석의 특이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그는 다른 능력주의자들과는 달리, 이런 식으로 입에 발린 겸양의 발언 같은 걸 내뱉지 않는다. 그런 ‘정치적 발언’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이 거둔 그 모든 성취가 온전히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공정한 경쟁’의 곳곳에서 그런 생각을 감추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낸다.

노력과 우연, 행운의 중첩 작용

2012년 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과 이준석 비대위원(오른쪽)이 비대위 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김종인 비대위원. [동아DB]
이준석은 ‘박근혜 키드’로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대의 나이에 집권여당 비상대책위원이 되는 벼락출세를 맛봤다. 덕분에 일찌감치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지역구에서는 연이어 낙선했지만 방송가의 눈에 들어 예능인으로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쌓았다.

그 과정에 이준석 본인의 노력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100%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러 가지의 우연과 행운이 중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일각에서 말하듯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의 아버지가 서로 돈독한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그러한 요소 역시 이준석이라는 사람의 출세를 논함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그저 자신의 ‘공정 철학’을 설파할 뿐, 이 모든 우연과 행운에 대해 이준석은 말을 아끼고 있다.

이준석은 카메라 앞에서 말을 잘 하는 젊은 정치인이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하지만 세상에 말 잘 하고 정치에 뜻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그 중 누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가.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노력을 하기 위한 무대 자체가 ‘유승민 친구 아들 이준석’이 아닌 수많은 정치지망생들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이준석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본인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보면 분명히 그렇다.

“가령 정당을 대표해 토론에 나가려면 우선 직위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 직위를 받아 본 적이 없거든요. 직위를 받아 다른 정치인들과 토론을 해본 젊은 사람은 제가 거의 유일하고요. 저는 제가 비대위원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토론에 나가면 상대로 김부겸 의원, 노회찬 의원 등이 나왔어요. 제 입장에서는 아주 고급의 대련, 훈련 기회를 얻은 셈이죠.”

일반적으로 이 정도 이야기를 꺼내면, 적어도 가식적으로라도 겸양의 말이 뒤따른다.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게 참 행운이죠. 그래서 젊은 정치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제공돼야 합니다’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준석은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잘났다, 내가 노력했다’로 마무리된다. 방금 인용한 문단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 “방송 토론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공부를 많이 하고 들어가도 준비한 것과 전혀 다른 질문이 나와 당황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잘 소화한 편이었어요.”

이렇게 한껏 뽐을 낸 후 이준석이 내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대목에 따로 제목을 붙인다면 ‘청년정치 사다리 걷어차기’가 어떨까 싶다.
“청년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이란 이름으로 기득권에 특별한 혜택을 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봐요. (중략) 저는 어렵더라도 기존 질서에 기대지 않고, 제 실력으로 청년정치를 실현시킬 생각입니다.”

“엘리트주의 감수하겠다”

나는 지금 일부 대목을 부풀려 이준석의 생각을 왜곡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준석은 정말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경쟁, 특히 자신이 인생의 승리를 거둔 입시 경쟁을 ‘공정한 경쟁’의 표본으로 여긴다. 본인의 중학교 시절에 대한 이준석의 회고담이다.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들 700명이 등수를 두고 다투었어요. 좀 잔인한 측면도 있지만 저는 그 시절의 공부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고요.”

우리 정치권, 특히 엘리트 중심의 보수 정당에는 공부를 잘 한 사람이 참 많다. 그들 중 상당수, 아니 대다수는 자신의 ‘공부 머리’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그 누구도,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본인이 승리를 거둔 입시 과정을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혹시 그런 경우를 본 적 있다면 제보 부탁드린다.

이준석은 이런 사람인 것이다. 내가 이긴 경쟁을 두고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 책이 나올 때까지 몇 차례나 교정지를 봤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표현을 그대로 대중 앞에 내보내는 사람. 몇 페이지 더 넘기면 “저를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가 빛나는 재능과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0선 중진’에 머물러 있는 이유를 왠지 알 것 같지 않은가?

‘공정한 경쟁’에는 좋은 내용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준석이 나름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교육 분야에서 그렇다. 학령인구가 줄고 있으므로 고등학교를 모두 기숙학교로 바꾸는 아이디어가 대표적이다.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면 사교육이 원천 봉쇄될 뿐 아니라 가정환경 때문에 겪게 될 위화감도 줄어든다. 특히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농어촌 지역의 경우 몇 개 학교를 통합해 기숙사로 운영하면 교육적 가치와 효율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정답’을 말할 때가 있다. 교육 문제를 다루는 5장에서 그는 한국 사회가 여성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더욱 장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고학력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겪고 직업 시장에서 이탈할 것을 우려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면서 저출산이 심화된다는 면을 놓고 볼 때, 이러한 현실 인식은 정확하다.

약자와 패배자에 대한 자비심

하지만 거기까지다. ‘정치평론가’로서 이준석이 내놓는 올바른 담론은, ‘정치인’ 이준석의 부풀어 오른 자의식과 호승심(好勝心) 앞에서 힘을 잃어버린다. 그는 자신이 언제나 공정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이긴다고 생각한다. 약자와 패배자에 대한 공감과 자비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을 타자화하며 당대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행보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도 그 경향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국민은 젊고 합리적이며 유쾌한 보수 정치를 원한다. 지금껏 진보 진영이 독점해온 정치적 의제를 다각도에서 검토하고 갱신하는 것 또한 보수 정치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약자, 소외된 자, 애초부터 발언권을 얻지 못한 자들에 대한 연민을 전제로 해야 한다. 내가 이긴 경쟁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경쟁이었다는 이준석과 그에게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마음 한 구석의) 우려를 감출 수 없는 이유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이준석#공정한경쟁#2030#청년정치#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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