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헤이세이 30년… 일본 어떻게 바꿨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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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사토 마사루 등 지음·송태욱 옮김/528쪽·2만2000원·열린책들

불과 20년 내 수도 한복판에서 독가스 테러가 벌어지고, 1만 명 넘게 숨진 대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원전마저 폭발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웬만한 국가라면 거의 망국(亡國)에 가까운 위기를 맞을 것이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자연재앙이 거대 문명의 붕괴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사린가스 테러,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폭발 등 지구상에서 전무후무한 이 재앙들은 일본의 헤이세이(平成) 연간에 모두 일어났다. 헤이세이는 일왕 아키히토의 연호로 그의 재위 기간은 1989년부터 2019년까지 30년이다.

이 책은 일본 외교관 출신의 유명 작가(사토 마사루)와 법학전공 교수(가타야마 모리히데)가 헤이세이 30년의 정치, 사회, 문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대담집이다. 두 저자 모두 우파 성향 지식인인데도 자민당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끈다. 예컨대 이들은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경제 정책에 합리성이 결여됐음을 지적하며 “실증성과 객관성을 무시하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세계를 이해하는 반지성주의자”라고 질타했다.

저자들은 일본이 겪은 재앙들이 중국 및 북한에 대한 위협 인식, 버블경제 붕괴와 더불어 “상당히 지루하게 질질 끌며 계속될 ‘만성적 위기’”라고 진단한다. 문제는 큰 사고를 당한 이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는 것처럼 일본의 경우 대중의 공포가 극우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과거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협상에 참여한 저자는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의 유라시아 외교 연설을 ‘일본의 제국주의 선언’으로 규정한다. 냉전 종식 후 아태지역 안정을 위해 일본이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선언인데 한반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미일중러 중심으로 아태지역을 관리할 수 있으니 한반도 등 주변국은 이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였다는 얘기다.

외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북한과 일본이 실상 미국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는 지적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의 정체성은 미제로부터 국가 방위였다”며 “일본도 미국으로부터 버려지면 곤란하다는 측면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쏴주면 미일 안보가 중요하다고 호소하기가 쉬워진다”고 털어놓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헤이세이#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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