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수]ESG에서 반도체까지 국제정치가 기업 흔든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05-07 03:00수정 2021-05-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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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탄소중립 뒤에도 냉혹한 국제정치가 숨어 있다.”

최근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탄소 배출 가격이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고 회사 차원에서 배출을 줄이려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꾸준히 주요 이슈로 다룰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5대 그룹 고위 임원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열풍 뒤에는 선진국들이 후발주자를 견제하려 진입장벽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임직원의 인권을 도외시하거나 탄소 배출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이른바 ‘착한 ESG 투자’ 기준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ESG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중국 기업 등에 대한 투자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수십 년 동안 탄소중립에 대비해 온 선진국 기준에 맞추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탄소중립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미 사업 전체가 국제 정세의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가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휘몰아칠지 몰랐다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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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일 갈등과 미중 갈등이 동시에 점화됐을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제가 SK 회장을 한 지 한 20년 되는데, 지정학적 위기가 이렇게까지 비즈니스를 흔들어 본 적이 없었다”며 이 위기가 30년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최근 미중 갈등이 기술패권 전쟁으로 확전했고,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인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가 패권전의 중심이 돼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첨단 공정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 장비에는 미국 기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중국 내 장비 반입이 만만치 않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는 지정학적 위기 속 외줄타기의 진정한 승부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중국에 둘 다 투자 발표를 했는데, 미국에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를, 중국에는 한두 세대 뒤처진 반도체 생산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중국의 요구대로 투자는 하지만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위치에 방점을 둔 셈이다. 하지만 결국 핵심 공정은 대만 본토에 둘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대만 정부는 외세 간섭에 대응하려 전략적으로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 본토에 두게 해 왔다. TSMC가 미국 투자를 확대해도 전체 생산시설의 86%는 대만에 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만 정부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미국과 중국에 ‘외교적’으로 투자하고, 결국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최선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업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대외 전략이 있긴 한 것인지 궁금하다. 30년은 이어질 전례 없는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가장 큰 불안요소로 여전히 ‘국내 정세의 불확실성’을 꼽는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반도체#국제정치#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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