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야 할 선정적 모금 마케팅[기고/김혜경]

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 입력 2021-05-03 03:00수정 2021-05-0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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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
어린이날 선언문이 발표된 지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또다시 코앞에 다가온 어린이날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지구촌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세계은행에 따르면 하루 2000원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 인구의 절반이 아동이라고 한다. 세계 5세 미만 아동 다섯 명 중 한 명은 절대빈곤 속에서 살아간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 많은 아동이 빈곤의 나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기구와 구호기관들도 이런 아동의 생존과 보호, 발달을 위해 어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사업비 확보가 시급한 탓인지 요즘 일부 기관의 모금 영상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의 헐벗은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영상이 상품 선전처럼 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는 ‘빈곤 포르노’라고 비판을 받으며 사라진 모금 마케팅이 부활한 셈이다. 이 같은 빈곤 포르노는 1980년대 서양에서 자선 캠페인의 붐이 일면서 시작된 것이다. 거액의 모금에는 성공했지만, 빈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어린이를 대상화한 선정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빈곤 포르노를 혐오하던 한 아프리카 남성의 인터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런 영상을 보는 걸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 그렇게도 잊으려고 했던 과거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웃어 보라고, 감사하다고 말하라고, 비쩍 마르고 허기진 몸으로 걸어가 보라고 말할 때 너무도 무기력했고 부끄럽고 화가 났다.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는 동물같이 느껴졌다.”

개발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는 어린이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말라리아 약을 제공하는 데는 실패하면서, 900만 부의 해리포터 시리즈를 단 하루 만에 배달하는 서구 경제의 모순을 꼬집었다. 살림살이가 비교적 나아지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혹시 이런 모순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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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선생이 주창한 어린이날은 1923년 5월 1일 노동절에 기념식을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선언문에는 어린이를 존중하고, 어린이의 배우고 놀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호소가 담겨 있다. 세계적으로도 아동권리선언이 일찌감치 선포됐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 기아와 질병에 고통받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연맹이 1924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을 발표했고, 유엔이 이를 보완해 1959년 아동권리선언을 채택했다. 이어 1989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아동을 적극적인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고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명시한 것이지만, 팍팍한 작금의 현실은 이런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소중하듯이 지구촌 모든 나라의 어린이들이 보편적인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어린이날에 즈음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과 그들의 인권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



#모금마케팅#어린이#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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