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때 엄마姓 따를 수 있게 법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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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25년까지 ‘父姓 우선’ 폐기
혼인-혈연 중심 ‘가족’ 개념 확대
비혼 동거인도 ‘배우자’로 인정
미혼부 자녀 출생신고도 간소화

정부가 2025년까지 아동이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하는 ‘부성(父姓) 우선’ 원칙을 폐기하기로 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이른바 ‘비혼 커플’도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하고 복지정책과 상속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여성가족부는 27일 이 같은 내용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건강가정기본계획은 국가가 추진하는 가족정책의 뼈대가 되는 밑그림이다. 이번 계획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5년 동안 추진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부부가 협의하면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행 민법은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혼인신고를 할 때 부부가 미리 약속한 경우 등 예외적으로 어머니 성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여가부는 앞으로 법무부와 민법 개정에 나서 부부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때 협의하면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통해 그동안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다양한 집단을 ‘법적 가족’의 범주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동거 및 사실혼 가정, 노인 동거, 학대아동 위탁가정 등이다. 이를 위해 배우자와 직계 혈족 및 형제자매 등만 가족으로 정한 민법 779조의 개정을 추진한다. 또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재산 분배 등에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민법상 유언제도를 개선하고,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는 방안도 상담하기로 했다.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배우자’의 정의도 확대해 동거 가정에서 발생한 폭력도 가정폭력으로 처벌할 방침이다.

미혼부(父)도 자녀 출생신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다. ‘혼외자(婚外子)’ 등 차별적 용어도 모두 ‘자녀’로 통일한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2025년까지 제도화할 방침이다. 여가부가 가족의 개념을 바꾸는 데 나선 것은 현재의 가족제도가 출산율 감소와 만혼(晩婚) 등 바뀌는 사회구조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기존 가족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가족 집단이 편견과 차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정책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혼동거-위탁가정도 법적 ‘가족’ 인정… 지원 사각지대 줄인다
각자 배우자와 사별한 뒤 황혼의 사랑으로 함께 사는 70대 노인 커플, 혼인신고가 속박이라고 생각해 동거하는 젊은이들, 친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어린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위탁가정….

이처럼 가족보다 더욱 가까웠지만 지금까지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이들이 진짜 가족이 되는 길이 열렸다. 여성가족부가 27일 내놓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일정대로 2025년까지 모두 법제화하면 이들은 법적인 가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최근의 사회적 흐름이 반영됐다. 지난해 여가부가 19세 이상 79세 이하 국민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혼인과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9.7%에 달했다. 국민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 가족의 정의가 바뀐다

현행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은 혈연과 결혼이 중심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배우자,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법적 가족이다. 배우자의 가족도 자신의 가족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함께 산 동거인이나 연인은 가족이 아니다. 이 때문에 법적 가족으로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상속받는 것도 어려웠다. 여가부 측은 “대안적 가족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민법상 유언 제도를 개선해 동거인 등이 상속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추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법정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자신의 재산을 줄 수 있는 ‘유언대용 신탁’도 이들 가정에 적극 알릴 예정이다. 다만 여가부는 동성 커플은 이번 가족의 범위 확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여가부 관계자는 “동성 커플을 확대 가족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은 앞으로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가족 범위가 넓어지면서 ‘배우자’ 범위도 확대된다. 지금까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사람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가정폭력’으로 처벌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 이에 준해 처벌하기로 했다. 가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가족도 생긴다. 정부는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먼저 숨진 자녀의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이른바 ‘구하라법’) 도입도 검토한다. 이 법은 가수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친모가 유산 상속을 주장해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 자녀 성 ‘부성(父姓) 우선’ 폐지 추진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는 ‘부성 우선’ 원칙은 폐지가 추진된다. 앞서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한 ‘부성 강제’ 원칙은 2008년 폐지됐다. 이를 대체한 부성 우선 원칙이 폐지 대상이 된 것이다. 부부가 아이를 낳은 뒤 출생신고를 할 때 누구의 성을 따르면 될지 협의해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함께 낳았는데 한 성만 일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은 성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부부 협의 원칙이 실효성도 갖춘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등 해외 일부 국가에서도 부모가 출생 전이나 출생신고 때 아이의 성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계획에는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지금까지는 저소득층에 해당되는 부모가 24세 이하일 경우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 34세 이하로 대상자를 늘린다. 그동안 생계급여를 받는 한부모가족에게는 아동양육비가 지급되지 않았지만 이들도 지원하기로 했다. 육아휴직 적용 대상자는 기존 임금 근로자에서 전체 근로자로 확대된다. 정부는 그동안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청소년 부모가 국내에 얼마나 있는지 규모를 파악한 뒤 지원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소영 ksy@donga.com·이지운·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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