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동아광장/이지홍]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1-04-23 03:00수정 2021-04-23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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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共 내세워 저지른 불의에 분노한 청년들
자유로운 경쟁 공정한 심판 떳떳한 보상
‘정부 실패’ 체험세대 요구에 귀 기울여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4·7 재·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특히 보수우파 후보들에게 몰표를 안긴 ‘2030세대’의 유례없는 선택은 참패한 집권 여당은 물론이고 압승한 야당에도 핵심 연구 대상이다. 이들 청년세대의 표심이 향후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불허의 상황을 맞았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과정과 결과의 변화무쌍함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2030세대의 반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올라선 대한민국 ‘경제 체제’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시사점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바로 탄핵정국 당시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 사이에 가장 유행했던 신조어들이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경쟁사회, 그럼에도 혼자 힘으로는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들어진 양극화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청년실업률도 치솟고 있었다.

들끓은 청년 민심을 헤아리며 집권에 성공한 현 정부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란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과감한 공공 주도 경제정책들을 급격히 밀어붙였다. 공공 일자리와 공공 임대주택 확대를 필두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각종 현금 지원 등 온갖 방식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하고, 규제를 가하고, 세금을 퍼부었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보장하고자 법정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고, ‘국민의 휴식권’ 증진이란 명목으로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다.

이 같은 정책들이 청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의 ‘시장’과 ‘경쟁’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있었다. 한정된 자원의 분배를 시장에 맡겼기 때문에 운동장이 기울어졌고, 따라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경쟁의 출발부터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엄격하게 감독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 경제적 정의(正義)를 구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이는 청년수당, 청년 임대주택 같은 정책들이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보다 보편적인 개념으로 진화하고 범사회적 관심을 끌게 되는 기폭제로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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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년세대의 지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개선될 기미조차 안 보이는 청년실업 문제 등 공공 주도 경제 운영의 전반적 성과도 큰 실망이었지만, 이들을 무엇보다 자극한 건 부동산 문제였다. 집값을 잡고자 이 정부는 어김없이 시장에 개입했다. 부동산 투기의 뿌리를 뽑겠다며 세금을 올리고 대출은 조이고 가격은 통제했다. 시장을 마비시키고 헌법 가치 훼손의 여지마저 다분한, 실로 극단적 수준까지 개입의 수위를 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집값은 폭등했고, 청년들에게 돌아온 건 ‘벼락거지’ 신세였다. 그들이 말하는 ‘결과의 정의’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부의 시장 개입은 과연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청년들이 묻기 시작했다.

코너에 몰린 정부의 신뢰도에 LH 사태가 결정타를 날렸다. 선봉에 서서 정의 구현에 나서야 할 국가 공무원들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불의(不義)’를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상 아무리 투기꾼들을 색출하고 현금 살포 공약을 쏟아내 봐야 백약이 무효일 뿐이었다. 이제 청년들은 정부마저 믿지 않게 됐다. 공공 포퓰리즘 확산을 이들이 발 벗고 나서서 거부했다.

4년 전 2030세대는 불완전한 시장의 횡포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시장 실패’ 이면에 존재하는 ‘정부 실패’의 모순(矛盾)을 체험했다. 성급하고 독선적인 정부의 시장 개입이 어떻게 시장과 경쟁을 오히려 더 왜곡하고 양극화를 부추기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그 원칙부터 묻고 있다.

청년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부르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시장과 경쟁 자체가 두렵고 싫어서일 리는 없다. 어쩌면 이들이 진정 바라는 건 오히려 자유롭게 경쟁하고, 공정하게 심판받고, 떳떳하게 보상받고 책임도 지는 사회일지 모른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기성세대의 가식적인 위로와 알량한 선심이 아니라, ‘할 수 있다’란 자신감과 간섭 없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일지 모른다. 청년들이 부모와 국가한테 관심과 보호만 바라는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언제나 그랬듯, 2030세대는 가장 원천적인 질문을 이 사회에 던지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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