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가 카톡감옥서 울어요”… 실제론 자녀의 SOS일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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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눈치채기 어려운 사이버 학폭, 자녀가 보내는 신호는

《초등학생 김가연(가명·12) 양은 단체대화방(단톡방)이 가장 무섭다. 같은 반 친구 4명과 다툰 뒤, 학급 친구들이 모두 참여한 단톡방에 김 양을 비방하는 글이 올라왔다. 돼지 몸에 김 양 얼굴을 합성한 사진도 등장했다. 김 양은 결국 2주 동안 심리 상담을 받았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사이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지난해 전체 학교폭력 피해자 중 온라인에서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 비율이 26.7%에 달했다. 2년 전인 2018년(10.7%)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 비대면 틈타 번지는 사이버 학폭
“폭력 경험” 2년새 2배로 늘어

춤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중학생 A 양(14)은 올 초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연 영상을 올렸다. 그러자 평소 A 양과 친하게 지내던 같은 반 친구 B 양이 영상 아래에 ‘예쁜 척만 하고 춤 실력은 없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이후 A 양의 다른 친구들도 ‘어설프게 걸그룹을 따라 한다’ ‘춤이 너무 웃기다’ 등 A 양을 조롱하는 댓글을 줄줄이 달았다.

일부 학생들은 A 양의 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공유하기도 했다. 급기야 영상이 한 유머사이트 게시판에 퍼져 성희롱 댓글이 달렸다. 모욕감을 느낀 A 양은 B 양을 불러 따졌지만 B 양은 오히려 “괴롭히려고 일부러 한 게 아니라 장난으로 시작한 일인데 왜 나를 범죄자 취급하느냐”며 화를 냈다. 이후 B 양은 A 양을 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을 만들어 A 양의 험담을 늘어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 양은 학교에 알렸고, 결국 법적 분쟁 끝에 B 양은 소년법상 보호처분(2호 수강명령)을 받았다.

○ 온라인에 퍼지는 학교폭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A 양처럼 ‘사이버 학교폭력(학폭)’을 겪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 원격수업이 계속되면서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하는 시간이 늘면서 학교폭력의 공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및 중고교생 약 1만5000명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학폭 조사를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은 2016년 7.7%에서 2018년 10.7%, 지난해에는 26.7%로 증가했다. 반면 학교 안에서 폭력을 당한 적 있다는 학생은 2016년 75.7%에서 2018년 71.3%, 지난해 45.9%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n번방 사건’처럼 성(性) 문제와 관련된 사이버 폭력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 학생 중 온라인 공간에서 성폭력을 당한 학생의 비율이 2016년 13.8%, 2018년 17.1%를 기록했지만 지난해는 44.7%로 크게 늘었다.

학교폭력 전문 단체 ‘유스메이트’의 김승혜 대표는 “처음에는 온라인상에서 낯선 사람이 평범하게 말을 걸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며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피해 여학생들이 쉽게 요구를 거절하지도, 신고를 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면서 반복해서 피해를 입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초중고교생 16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피해 실태 조사 결과 3명 중 1명(36%)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낯선 사람의 대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화를 나눈 낯선 사람의 나이는 14∼16세(45%)가 가장 많았고 17∼19세(43%)가 뒤를 이었다. 대화 내용은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 정보를 요구하거나(23%), 쉽게 용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하거나(10%), 특정 신체 사진을 요구하는 것(6%) 등이었다.

○ 빠르고 은밀하게 퍼지는 폭력

사이버 학폭의 종류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피해 학생을 특정해 비방하는 글을 SNS에 올리는 ‘저격글’부터 단톡방에서 여러 명이 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욕설을 하며 궁지로 몰아붙이는 ‘떼카’, 피해 학생이 대화방을 나가면 반복해서 다시 초대해 괴롭히는 ‘카톡 감옥’, 스마트폰 테더링 기능을 이용해서 특정인의 데이터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와이파이 셔틀’까지 나온다. 또 폭력 현장을 촬영해 SNS에 올리는 등 오프라인 학폭과 결합된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사이버 학폭은 일반적인 학폭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시공간의 경계가 없다. 24시간 어디서든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경우 하교 이후 집에 오면 최소한 물리적인 가해 행위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데, 사이버 폭력은 그런 게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학폭을 “피해 학생을 하루 종일 옭아매는 폭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이버 학폭은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다 보니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직접 목격하기 어렵다. 피해자의 감정이나 반응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기도 쉽지 않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피해자의 고통을 마주하지 않다 보니 가해 학생들이 죄책감은 덜 느끼고, 자신의 가해 행위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더 가학적인 폭력을 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에 유포된 사이버 학폭 피해자의 개인 정보, 사진이나 영상 등이 불특정 다수에게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요소다.

○ 우울한 카톡 프로필, 학폭 의심해야

그렇다면 자녀의 사이버 학폭 피해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아챌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고 상처 등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이버 학폭 특성상 자녀의 행동이나 말투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징후가 자녀가 불안한 기색으로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자주 확인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올해 초 중학생 C 군(13)은 같은 학교 ‘일진’들에게 사이버 학폭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C 군을 따돌리고 돈을 뺏던 일진들은 C 군이 자신들을 피해 다니자 폭력의 장소를 온라인으로 옮겼다. 단톡방을 만들고 C 군을 초대해 피 흘리는 사람의 사진과 욕설 문자 등을 끊임없이 보냈다. C 군이 단톡방을 확인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놓으면 페이스북에 ‘○시까지 휴대전화를 켜서 답장하지 않으면 밤에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협박성 글도 올렸다.

C 군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단톡방 알람 때문에 밤에도 편하게 누워 자지 못하고 앉아서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C 군의 부모는 아들이 사이버 학폭 피해자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C 군의 부모는 이후 상담 과정에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중학교 진학 이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공부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넘어간 나 자신이 너무나 후회된다”고 말했다.

SNS 상태 메시지나 프로필 사진 분위기도 자녀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수단이다. 갑자기 우울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뀐다면 한번쯤 사이버 학폭 피해를 의심해 봐야 한다. 반대로 이를 통해 가해 사실을 알아챌 수도 있다. 특히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 상대를 비방하고 험담하는 짧은 ‘저격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가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또 아이들이 남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우리 반 친구 ○○이가 ‘카톡 감옥’ 때문에 울었다”, “몇몇 친구들이 친구 ○○이한테 야한 영상이랑 사진을 보낸다”고 말하는 식이다. 주로 부모에게 직접 피해 사실을 이야기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보내는 간접적인 ‘SOS 신호’에 해당된다.

휴대전화 사용 요금이 평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경우도 눈여겨봐야 한다. 모바일 게임 아이템을 대신 사주는 일명 ‘아이템 셔틀’을 하거나 앞서 언급한 ‘와이파이 셔틀’을 하는 데 쓴 비용일 수 있어서다.

만약 자녀가 온라인상에서 이름보다는 비하성 별명 또는 욕설로 불릴 때, 자녀에 대한 야유나 험담이 많이 올라올 때 등이 자녀와 대화를 통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 경우로 꼽힌다.

조 회장은 “앞으로 기술이 발전해 새로운 정보통신기기와 온라인 문화가 등장하면 사이버 학폭의 종류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질 것”이라며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잘 인지해 사이버 학폭의 위험으로부터 자녀들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속상해서 야단치면 아이 가슴에 평생 상처… 함께 공감하며 위로해야
자녀가 사이버 학폭 당했을때 부모 대처법





자녀가 사이버 학교폭력(학폭)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부모가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보이는 ‘첫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속상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불쑥 던진 부모의 말이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가장 많이 보이는 반응 중 하나는 “내가 못 살아. 왜 그동안 말을 안 했어!”라며 아이를 책망하는 것이다. “대체 평소에 학교생활을 어떻게 한 것이냐”고 야단치듯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타까움에 무의식중에 내뱉는 말이지만 자칫 문제의 원인을 자녀에게 돌리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용기를 내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고백한 아이가 더 주눅이 들어 아예 입을 닫을 수 있다. 결국 부모가 피해 상황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그림마당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송인진 심리상담사는 “학폭을 당한 이후 부모에게 지지와 위로를 받지 못한 아이들 마음속에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쌓인다”며 “초등학생 때 학폭 피해를 당한 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피해 당시 대처에 미숙했던 부모에 대한 분노가 터져 부모와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녀가 겪은 피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자녀에게 피해 사실을 듣자마자 “내일부터 당장 학교 가지 말고 일단 집에 있어” 등의 반응을 보이면 아이가 과도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동안 홀로 힘들었을 자녀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은 필수다. 일부 부모는 화를 참지 못하고 가해 학생이나 학생 보호자를 찾아가 직접 폭행과 욕설 등의 보복을 해 오히려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한유경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은 “피해 학생의 보호와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부모가 또 다른 가해자가 돼 새로운 분쟁에 휘말리면 그 피해는 결국 다시 자신의 자녀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3단계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라고 조언한다. 3단계 절차란 ‘증거 확보하기―주위에 도움 청하기―사이트 관리자에게 삭제 요구하기’다.

흔히 사이버 폭력을 당하면 가해자를 무작정 차단하거나 가해가 이뤄진 온라인 공간을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전에 방에 남아있는 관련 증거를 캡처하는 등 방식으로 증거를 충분히 수집해야 한다. 이후 학교나 경찰 등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사이버 학폭이 이뤄진 웹사이트 업체나 관리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게시물은 삭제나 블라인드 처리를 요구할 수 있다. 단, 사이버 학폭의 수위가 높거나 복잡하다면 수사 기관 및 변호사 등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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