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벌의 조상은 육식곤충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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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의 사생활/소어 핸슨 지음·하윤숙 옮김/401쪽·2만 원·에이도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히브리인들에게 약속한 축복의 땅 가나안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유목민이던 히브리인들의 입장에서 젖이 풍부하다는 건 많은 가축을 거느리는 걸 뜻한다. 꿀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은 곡식과 화초가 만발해 벌이 꼬이는 땅이다. 다시 말해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젖과 꿀은 모든 게 갖춰진 풍요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인류사와 생태계에서 벌이 가졌던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곤충은 인류에게 줄곧 재앙이나 혐오의 대상이었다. 약속의 땅으로 가려는 히브리 노예를 가로막은 이집트 파라오에게 하나님이 내린 무서운 형벌 중 하나는 메뚜기 떼의 습격이었다. 영화 ‘에이리언’(1979년)에서 흉칙한 외계 생명체의 모티브는 곤충이었다. 하지만 벌만큼은 곤충인데도 인류에게 늘 환영을 받았다. 달콤한 벌꿀은 그 자체로 훌륭한 식품이었을 뿐 아니라 술과 그릇 등 다양한 용도로 유용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대 중국인들은 쌀과 산사나무 열매를 곁들인 벌꿀 술을 즐겼고, 켈트족은 헤이즐너트를 가미한 벌꿀 술을 들이켰다.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의 신석기 유적에선 밀랍을 섞은 질그릇이 발견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벌은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 식물종을 낳은 일등공신이다. 생물학자들은 후기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되는 꽃식물의 폭발적인 증가는 벌의 진화와 관련이 있는 걸로 보고 있다. 온통 침엽수와 양치식물이 지배하던 당시 식물군이 다양한 꽃식물로 진화한 건 ‘꽃가루받이’를 하는 벌이 등장한 덕분이라는 것. 실제로 벌은 수억 년 전엔 파리나 진딧물, 나비 등을 침으로 죽인 뒤 잡아먹은 육식곤충이었다. 하지만 약 1억5000만 년 전 벌은 지천에 널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꽃의 꿀로 먹잇감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꽃식물은 효율적인 수분(受粉)을 위해 벌을 유인할 수 있는 화려한 색상과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그야말로 벌의 사생활이 식물계의 거대한 진화를 가져온 셈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벌의 조상#육식곤충#벌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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