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영국 왕실의 인종차별 폭로한 왕손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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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는 프랑스의 풍자 전문 주간지입니다. 지면의 대부분을 만평으로 채우는 이 잡지는 인종차별적 만평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2012년에는 이슬람 지도자 무함마드의 알몸을 묘사한 만평을 게재했고, 2015년에는 터키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난민 어린이를 조롱하는 만평을 싣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조롱이 도를 넘자 2015년 파리에 있는 에브도 사무실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총기를 난사해 직원과 경찰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잡지가 이번에는 영국 왕실을 조롱하는 만평을 실어 논란입니다. 10일 발간된 잡지 표지에 메건 마클 영국 왕손빈(40·사진)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무릎에 목이 짓눌리는 그림을 실은 겁니다. “숨을 쉴 수 없어서”라는 마클의 말풍선과 함께 ‘메건이 버킹엄을 떠난 이유’라는 글자가 선명합니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장면을 비유한 겁니다. 의도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일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영국 왕실의 입장에서는 모욕감을 느낄 만합니다.

앞서 영국 왕실을 떠난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부부는 미국 CBS 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왕실 생활 중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주장했습니다. 7일 오프라 윈프리의 독점 인터뷰로 진행된 2시간 분량의 토크쇼에서 마클 왕손빈은 왕실 사람들이 아들의 검은 피부색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클은 아들 아치를 임신했을 당시 왕실로부터 아이에게 왕자 칭호를 붙이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윈프리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당사자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마클은 왕실 생활 당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녀는 “무례함과 인종차별은 다르다”며 왕실에서 명백한 인종차별이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왕실은 결혼식 직후 마클의 여권과 신용카드를 압수했고, 마클은 “포로가 된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해리 왕손은 마클의 이런 모습에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비극이 반복되는 듯했다는 의미입니다. 결혼 15년 만인 1996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는 악의적 소문에 시달리다가 1997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왕세자비입니다.

2018년 결혼한 해리 왕손 부부는 왕실과 갈등을 겪다 지난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해 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영국 왕실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비판적 논조의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영국 왕실의 공식 입장 표명은 없는 가운데 해리 왕자의 친형인 윌리엄 왕세손은 11일 “우리 가족은 인종주의자가 전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항변만으로 왕실에 드리운 의혹의 시선이 거둬지기엔 역부족인 듯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영국#왕실#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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