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위 불신 오명 중고차 시장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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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산업1부 차장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쇼핑을 할 때 소비자는 무엇을 고민할까. ①품질이 좋은지 ②디자인이 괜찮은지 ③가격은 적당한지. 대체로 발품을 팔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풀리는 문제다. 그런데 2021년 대한민국에서 덤터기를 쓰는 건 아닌지,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닌지 잔뜩 겁을 먹고 접근해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중고차 시장이다.

계약금까지 내고 차를 샀는데 명의이전을 하러 가자며 차에 태우고는 고속도로에 들어가 “사실은 고장 난 차다. 계약금은 못 돌려준다”고 협박하며 엉뚱한 차를 비싸게 강매한다. 인터넷에 무사고 차량이라고 소개된 설명을 믿고 샀는데 알고 보니 뼈대가 찌그러질 정도로 큰 사고가 났던 차다. 최근 수년간 실제로 경찰에 적발된 중고차 사기다. 포털 사이트에서 ‘중고차’를 검색해 보니 2020년식 제네시스 최고급 무사고 차를 790만 원에 판다고 올라와 있다. 전형적 허위 매물이다.

어느 나라나 중고차 시장은 레몬 마켓(정보 비대칭으로 불량품이 판치는 시장)이라지만 한국은 상황이 심각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상담센터에 2018∼2020년 접수된 중고차 거래 불만 상담건수(2만1662건)가 전체 업종 중 5번째로 많다. 차량 성능 거짓 고지, 주행계기판 조작 등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0.5%가 국내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혼탁하다고 응답했다. 과거처럼 대놓고 뒤통수를 치는 사기는 줄고 있다지만 이것만으로 신뢰를 얻기는 한계가 있다.

시장에서 메기 역할을 할 플레이어를 투입해 제대로 된 경쟁을 붙이자는 주장은 여기서 나온다. 2013년 정부가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며 대기업 진입을 막았지만 돌아온 건 시장 왜곡에 따른 소비자 피해라는 논리다.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일부 부합하지 않는다’고 정부에 의견을 제출한 건 소비자 불신도 감안됐다고 볼 수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에서 출고 기준 최대 6년 또는 10만 마일 보증을 제공하는 온라인 중고차숍을 운영한다. 도요타는 일본에서 구입 후 1년간 주행거리와 상관없이 무제한 보증해 주는 인증 중고차 판매 사업을 한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지만 SK그룹이 만든 엔카닷컴은 국내 최대 중고차 거래 플랫폼으로 자리하며 불투명한 시장에서 그나마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대기업 진출만이 능사는 아니다. 영세업자 생존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 해도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고 뒷짐만 지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생계형적합업종법에 따라 정부는 동반성장위 의견을 받은 뒤 최대 6개월 안에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1년 4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갈등과 우려가 있다면 이해 당사자들을 모아 토론시키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쪽이 대화를 거부하면 설득을 해서라도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 연간 250만 대가 거래되는 중고차 시장은 주로 서민들이 찾는다. 이들을 무질서한 시장에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허위#불신#중고차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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