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주기 청문회로는 산업재해 못 줄인다[기고/정진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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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산업재해 예방은 과학이자 예술이다.”

산업재해 예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1931년 자신의 저서 서문에서 밝힌 말이다. 산업재해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엄벌만능주의와 면박주기가 능사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최근 국회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대기업을 대상으로 산업재해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중소기업, 행정기관, 공기업은 제외하고 대기업만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명에도 기업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인가. 선거를 앞두고 산업재해 영역에서의 ‘욕받이 만들기’라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추궁으로 산업재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진작 해결됐을 것이다. 문제는 실질적 효과가 없는 보여주기식 쇼에 의존할수록 정작 산업재해 문제 해결과 멀어진다는 점이다. 청문회로 정치권이 산업재해 해결에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심리적 효과를 얻을 순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눈가림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산업재해 문제까지 이념과 과시로 치환하려는 식의 움직임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각한 것은 여야가 경쟁이라도 하듯 도가 지나칠 정도의 강공책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표심을 노린 정치적 퍼포먼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억지로나마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발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접근보다 감성적이고 비이성적인 접근에 능숙한 정치권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못내 씁쓸하다.

국회는 이미 기업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 조항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유례없는 법을 만들었다. 이마저도 모자라 이제는 군기 잡기를 대표 브랜드로 내세울 기세다. 산업안전 분야의 잘못으로 따지면 기업도 문제가 많지만 국회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온갖 규제로 점철된 누더기로 바꾸고, 준법 의지가 강한 기업조차도 지키기 어려운 중대재해법을 만든 장본인이 국회가 아니던가. 법 공동체의 공동책임과 책임정치 태도는 보이지 않으면서 ‘군기반장’을 자임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시스템을 혁신하려는 노력 대신 비현실적이고 실효성이 낮은 입법을 양산하면서 책임은 기업에 떠넘기는 데 급급한 ‘내로남불’ 정치로는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

국민들은 여론에 즉자적으로 편승하는 국회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차분하게 진단하고 진정성을 갖고 예방책을 고민하는 국회, 선거용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공부하는 국회, 정치공학이 아닌 실사구시의 국회를 보고 싶어 한다. 이런 국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무책임의 정치를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망신주기#청문회#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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