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惡, 단죄 못하는 현실… 판타지가 대신 통쾌한 응징

손택균 기자 입력 2021-01-21 03:00수정 2021-01-2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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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다룬 웹툰들 인기
“극악범죄 솜방망이 처벌 현실
대중의 불신과 분노 반영”
웹툰 ‘경이로운 소문’의 주인공 소문(왼쪽 사진)과 ‘1초’의 호수는 초능력을 발휘해 무도한 악당들을 징벌한다. 이들의 인기에 대해 “위난에 처한 약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좌절감이 초월적 영웅의 활약을 그린 후련한 판타지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웹툰·네이버웹툰 제공
말 못 하는 아기를 입양한 뒤 폭력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한 부부의 죄목이 학대에서 살인으로 최근 바뀌었다. 미디어를 통해 공분이 일지 않았다면 사법 시스템이 이리 엄하게 움직였을까. 지금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그런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지. 드라마로 각색돼 방영 중인 웹툰 ‘경이로운 소문’의 주인공 소문이가 실재한다면 아마 또박또박 말해줄 거다.

“그 애들, 내가 구해줄게요. 악귀와 다름없는 어른들, 내가 산산조각 내버릴 거야.”

드라마에서는 적잖이 희석된 이 웹툰의 매력은 공연히 질질 끌거나 주저하지 않는 화끈함에 있다. 고가도로 밑에서 놀다가 우연히 이승 너머의 초능력을 갖게 된 소문이는 동료 ‘카운터’들과 협력해 악귀들을 추적한다. 심성 맑고 올곧은 이 10대 주인공은 여느 카운터와 달리 능력을 건네준 시스템이 정해놓은 행동강령에 순순히 복종하지 않는다.

‘아무 죄 없는 친구들이 학교 일진들에게 기절하도록 얻어맞았는데도 평범한 인간들이니까 초능력을 써서 혼내주면 안 된다고…? 힘없는 꼬마의 엄마를 악귀들이 납치해서 죽이려 하는데 완벽한 구출작전을 짤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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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는 그런 거 모른다. 악귀와 다름없는 구제불능 폭력배들을 단호하게 처단하고, 엄마 잃고 우는 꼬마를 잠시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으니 작전이고 뭐고 단독으로 돌진한다. 이것저것 따지고 이리저리 책임을 미루며 개입을 피하다가 희생자가 발생한 뒤에야 움직이는 비효율적 시스템을, 소문이는 한순간 망설임도 없이 훌쩍 뛰어넘는다. 그가 던지는 것은 ‘악에 희생당하는 이들이 눈앞에 있는데 도대체 뭘 고민하느냐’는 항변이다.

독자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소문이가 발휘하는 초능력이 아니라 그 거침없는 단죄다. “음주 후 심신미약 상태로 저지른 죄이므로”, “피해자와 합의했고 깊이 반성하므로” 형량을 줄인다는 속 터지는 뉴스에 지친 사람들에게 웹툰 속 초월자가 행하는 명쾌한 응징은 잠시나마 시원한 위로를 안긴다. 지난해 4월 시즌2 연재를 개시한 이 작품은 다음웹툰 주간인기랭킹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극악무도한 범죄 대응에 지지부진한 공권력과 솜방망이 처벌 소식에 환멸이 나는데 웹툰에서나마 답답함을 풀어줘 고맙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네이버웹툰 인기작 ‘1초’ 역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결단으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고 비극을 막는 대리만족의 후련함을 안겨준다. 미래를 내다보는 주인공 호수는 임무에 소홀한 채 윗선에 아부하기에만 바쁜 인물이 유발한 인명피해 사고를 가까스로 막아낸다. 호수가 그에게 날리는 통쾌한 분노의 펀치는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 긴급한 상황에서 때로 고답적 명령체계에 과감히 저항하는 호수는 ‘사람 구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왜 자꾸 잊느냐’고 뼈아프게 행동으로 따져 묻는다.

지난주 완결된 네이버웹툰 ‘후기’ 또한 가족을 파멸시킨 범인을 찾아 복수하는 과정에서 기이한 위장술을 발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대 교수)는 “법제도가 반인륜적 범죄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너무 커졌다. 법망의 허점을 이용하는 악인들을 사회가 엄벌하지 못하는 현실이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초능력자가 활약하는 판타지에서 사필귀정의 대리만족을 얻는 거다. 재미있게 보고 난 뒤에도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그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드라마#웹툰#경이로운 소문#네이버 웹툰#1초#초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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