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 몰카’ 유죄… “성적 대상 안될 자유” 첫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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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여성 뒷모습 동영상 촬영
대법, 무죄 원심 깨고 파기환송
“노출 부분 촬영만 처벌 대상 아냐… ‘기분 더러워’ 표현도 피해 증거돼”

레깅스를 입어서 맨살이 드러나지 않은 여성의 하반신이라도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했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출 정도와 관계없이 촬영 당시 상황과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을 고려해 불법 촬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두고 “성적(性的)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도 법률로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노출 안 했더라도 몸매 함부로 촬영하면 불법”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불법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A 씨는 2018년 5월 버스 안에서 운동복 상의와 레깅스 바지를 입고 서 있는 피해자의 뒷모습을 휴대전화를 이용해 8초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행법은 성적 욕망 또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신체 부위를 당사자 의사에 반해 촬영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 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 씨에게 7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A 씨가 엉덩이와 다리 부위 등을 촬영했고, 실제 피해자의 항의로 A 씨가 검거되는 등 동영상 촬영 행위가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은 당시 피해자의 신체 노출이 거의 없었고, A 씨가 엉덩이 등 특정 부위만 부각해 촬영한 건 아니라는 점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항소심은 또 “피해자는 경찰에서 당시 심정을 진술하면서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느냐’고 했는데, 이를 불쾌감과 불안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반드시 노출된 신체 부분을 촬영해야만 처벌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A 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 “성적 대상화 되지 않을 자유 보호받아야”

대법원은 “피해자의 ‘기분 더러웠다’는 진술 역시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좁게 이해하는 것은 다양한 피해 감정을 소외시키고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만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성적 수치심뿐 아니라 성적 ‘빡치심’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이번 판결의 취지다.

대법원은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신체는 엉덩이, 가슴 등 신체 부위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한 일선 법원의 판단 기준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몰카 범죄’를 처벌하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 대해 “피해자의 성적 자유와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라면서 “성적 자유는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주로 강간 사건에서 “성적 자유는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라고 해석해왔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성적 자유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레깅스 몰카#무죄 파기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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