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적 공수처에 대한 소신’, 끝까지 지켜야[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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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인사청문회 때 청사진 제시하고 검증받고
취임하면 중립성 훼손 시도에 단호하게 맞서야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공수처장 힘든 자리다. 나라 생각하면 되면 좋겠고, 사람 생각하면 떨어져도 좋겠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는데, 그런데도 고사하지 않는 까닭은 명예 때문이 아니라 소명 때문이라 나는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자를 지명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29일 김 후보자와 가까운 한 목사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렸을 때부터 김 후보자를 잘 알고 지낸 이 목사는 김 후보자에 대해 “예수를 진짜로 잘 믿고, 직업을 소명으로 알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다음 날 문 대통령은 최종 후보군에 오른 2명 중 검사 출신을 배제하고 김 후보자를 선택했다.

김 후보자는 판사와 변호사, 특검 파견 수사관,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등 다양한 법조 경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수처의 초대 수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터라 김 후보자의 자질 등은 법조계에서도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김 후보자의 학창 시절 친구와 사법연수원 동기, 함께 일한 법조인, 그리고 김 후보자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김 후보자의 평판을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합리적인 보수 성향에 가깝고,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고집이 있다.’

충북의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키웠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와 신앙생활에 집중해 ‘아주 완전한 모범생’으로 불렸는데, 말하자면 ‘개천용’에 가깝다. 경제학과 진학을 꿈꾸던 그는 고교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문화재를 연구할 수 있는 고고미술사학과로 진학했다. 경제학을 부전공하던 그는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헌법학을 수강하다가 법학에 흥미를 느껴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년 6개월 만에 초고속 합격했다. 3년 동안 판사 생활을 하던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옮겼고, 거기서 하버드대 로스쿨에 연수를 갔다. 동시통역대학원도 다녔다. 헌재에 근무하면서 서울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부 지인들은 검찰개혁 등에 관한 발언에서 보수 성향에 가깝다고 느꼈다고 한다.

‘옳다는 길은 죽어도 양보 안 한다’고 할 정도로 고집이 있다는 것도 주변의 일관된 평가다. 김 후보자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어록 중 하나인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올해 새해 인사로 건넨 것도 예사롭지 않다. 고집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측면에서 여권과 마찰을 빚은 법관 출신의 최재형 감사원장을 떠올리는 법조인도 있다고 한다. 여권이 공수처 조기 출범만을 지상 과제로 삼으면서 처장 후보자 추천과 검증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여권이 후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법조계에서 나온다.

김 후보자를 최근 만난 한 지인은 “공수처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세팅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되려면 청와대, 검찰 등과 풀어야 할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 후보자의 법조 경력 25년 중 수사 경험은 1999년 10∼12월 ‘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특검’ 수사관 파견 2개월이 전부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등 70여 명을 이끌 리더십도 검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공수처의 처음과 끝은 처장’이라고 할 정도로 처장은 인사와 수사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 운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밝히고, 검증받아야 한다. 취임한다면 공수처 중립성을 훼손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중립적 공수처#인사청문회#중립성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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