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지속적 폭력-잔혹한 수법… 살인죄로 처벌된 ‘원영이’ 사례와 비슷”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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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적용 9개 판결 비교해보니
고의성 입증여부가 최대 관건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에 대해 형량이 낮은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인이에게 가해진 지속적인 폭행과 방임, 범행 수법의 잔혹성 등을 볼 때 가해 부모가 살인죄로 처벌된 ‘원영이 사건’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인이의 사망 당일인 지난해 10월 13일 양모가 정인이에게 심각한 폭행을 가했던 것으로 검경 수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집에는 정인이와 양모 둘만 있었고, 이웃 주민이 4, 5차례 ‘쿵’ 소리를 듣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의학자들은 정인이 부검 결과 소장과 대장, 췌장 등 장기가 절단돼 있어 사망 당시 영유아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심각한 충격이 복부에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놓고 있다.

가해 양모를 살인죄로 처벌하려면 범행의 고의성 입증이 관건이다. 양모가 정인이를 숨지게 할 수 있다고 인식할 정도로 심각한 폭행을 가했거나,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한 사실이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검찰은 가해 양모에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 판단하기 위해 정인이의 사망 원인을 재감정하고 있다. 법의학자들이 참여한 재감정 과정에서 정인이 몸에 수차례 폭행을 당한 흔적과 외부에서 강한 충격을 받은 흔적이 다수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법원은 ‘원영이 사건’의 가해 부모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구호조처 등을 하지 않은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했다. 원영이의 양모와 친부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27년과 17년이 확정됐다. 원영이 사건은 2016년 양모와 친부가 당시 7세이던 원영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다. 양모는 원영이를 화장실에 가둔 상태로 몸에 락스 1L를 들이붓고, 옷을 다 벗긴 뒤 찬물을 퍼붓는 등 학대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영이가 감금된 화장실은 난방이 안 되고 환풍기가 외부로 연결된 구조였다. 구조 당시 외부의 최저 기온은 영하 8도였다”면서 “의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 당시 가해 부모는 “아이를 숨지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법원은 이들에게 학대로 인해 원영이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봤다.

다만 정인이 사건에서 범행의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본보가 2020년 한 해 아동을 학대·살인한 부모에게 살인죄가 적용돼 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9개의 판결문을 전수 조사한 결과 대부분 아이의 목을 조르거나, 약을 먹여 살인하는 등 고의성이 비교적 명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상준 speakup@donga.com·유원모 기자
#정인이#살인죄#원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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