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EO 연봉’ 거품 없애려면 이사회가 더 깐깐하게 감독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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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업 CEO 보상체계 뜻밖 허술… 어림수로 대충 계산해 금액 높여
이사회의 치밀한 성과분석 필수… 적정한 보수로 기업이익 지켜야
주주들 의견 반영도 고려해볼만

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보상 금액은 이사회가 결정한다. 이사회는 CEO의 성과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 금액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 기업의 CEO 보상 체계가 의외로 과학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이사들이 정량적인 성과를 기반으로 보상 금액을 정할 때도, 끝자리가 ‘0’으로 떨어지는 어림수로 짐작해 보상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학문적 용어로 ‘히핑(Heaping)’이라고 부른다. 히핑은 정확한 정보가 부족할 때 10의 배수와 같이 예측 가능한 어림수를 제공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사람들이 자기 나이를 말할 때는 정확한 값을 얘기하지만, 불확실한 타인의 나이를 말할 때는 어림수를 사용하는 게 히핑 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런던정경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CEO 보상에 히핑 현상이 나타나는지, 또 이사회의 특성이 히핑 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연구팀이 1만여 개의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예상외로 많은 CEO가 1만 혹은 10만으로 나눠떨어지는 어림수의 금액 또는 주식 수로 보상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기본급의 36%, 재량적 상여금의 41%가 1만 달러 단위로 끝나는 금액으로 부여됐다. 또 주식매수선택권의 24%가 1만 주의 배수로 부여됐다. 이런 현상은 CEO 보상 금액이 성과지표를 비례적으로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성과 지표인 주당순이익과 주식 가격은 ‘0’으로 끝나는 빈도가 각각 9%와 11%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이사회의 특성이 어림수 보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따져봤다. 우선 이사회의 감독 기능이 어림수 보상 빈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분석 결과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등 이사회의 감독 기능이 약한 기업에서 CEO 보상의 어림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구팀은 기업 외부 이해관계자의 이사회에 대한 감시가 어림수 보상의 빈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봤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연구팀은 2011년 미국에 도입된 ‘Say on Pay(주주들이 최소 3년에 1회 이상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의 보수가 적정한지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제도가 보상의 어림수 비율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기업이 투표 결과를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지만 주주들이 경영진의 보수에 대해 표결로 의사를 표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사회에 대한 주주 감시를 강화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분석 결과, 보상의 어림수 비율은 이 조항이 도입되기 직전 2년 동안에는 21%였으나 도입된 직후 2년간은 17%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업의 이사회가 CEO 보상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에 소홀한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어림수로 CEO 보상을 계산하면 어림수를 쓰지 않을 때보다 보상 금액을 높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기업 가치를 저해할 수 있다. CEO 보상 금액을 보다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감독 기능과 더불어 이해관계자의 모니터링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준다.

김진욱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jinkim@konkuk.ac.kr

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ceo#연봉#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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