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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자궁경부암 흑인 여성의 세포가 세상을 구했어요

입력 2020-12-09 03:00업데이트 2020-12-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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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배양 위해 떼어낸 암세포, 증식속도 빠르고 내성 강해
수많은 의학 연구에 활용… 소아마비 퇴치 등 인류에 공헌
실험에 쓰이는 줄 몰랐던 유족은 100년만에 경제적 보상 받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헨리에타 랙스의 생전 모습. 연구진은 랙스의 암세포 조직을 떼어내 헬라세포를 배양했다. 사진 출처 헨리에타 랙스 재단
1920년 8월 1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는 서른 살 무렵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어요. 이후 암이 급속도로 온몸으로 번지면서 1951년 10월 세상을 떠났죠.

헬라세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요. 랙스를 치료하던 의료진은 그의 암세포 조직을 떼어내어 병원의 세포생물학 연구자인 조지 가이에게 보냈어요. 당시 가이는 실험실에서 인간 세포를 배양하려 시도하고 있었어요. 인간 세포는 몸 바깥에서는 잘 자라지 않아 연구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랙스의 암세포는 실험실에서도 잘 자랐어요. 가이는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의 앞 글자를 따 ‘헬라(HeLa)세포’라는 이름을 붙인 이 세포를 배양했어요. 헬라세포는 세계 각지에서 연구되면서 생물학계에 혁명을 일으켰어요.

그런데 문제는 랙스의 세포가 실험에 쓰인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몰랐다는 거예요. 1950년대 초에는 세포를 채취하고 실험용으로 쓰기 위해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유가족들은 기자들이 헬라세포를 취재하러 찾아온 1975년경까지 헬라세포의 존재조차 몰랐죠.

랙스 탄생 100년이 되는 올해 8월, 유가족에게 처음으로 경제적 보상이 돌아가게 되었어요. 영국의 생명공학 기업 ‘앱캠’과 미국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의 세포생물학 연구 책임자인 사마라 렉피터슨의 연구실이 유가족을 지원하는 재단에 돈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죠. 기부금은 랙스 후손의 장학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랍니다.

○끝없이 분열하고 증식하는 헬라세포

우리 몸의 세포는 분열을 거듭하면서 수를 늘려요. 밥을 먹으면 키가 크고 상처가 나면 새 살이 돋는 것은 세포의 크기가 커지기 때문이 아니라 세포가 분열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세포가 분열해서 두 개의 ‘딸세포’가 되는 과정을 ‘체세포 분열’이라고 불러요.

분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유전 물질인 ‘DNA’를 복제하는 거예요. DNA는 세포의 핵 속에 생명 정보가 오롯이 담겨 있는 중요한 물질이에요. 세포는 분열 전 준비 기간에 DNA를 2배로 복제해서 두 딸세포에 나눠 주죠.

그런데 분열하는 동안 DNA에는 오류가 생길 수 있어요. 물론 세포 내에는 오류가 일어난 DNA를 수리하는 기능이 있지만, 분열이 계속 일어나면 세포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DNA의 돌연변이가 많아지기도 해요.

이런 세포는 스스로 죽어서 분해되는데, 이를 ‘세포자살’이라고 해요. p53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이 과정을 담당하지요. 그런데 스스로 죽는 기능이 고장 난 세포는 자기 마음대로 분열해서 수를 늘리게 돼요. 그것이 바로 헬라세포와 같은 암세포예요. 2013년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이 헬라세포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8번 염색체에서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유전자가 발견되었어요. 생물학자들은 헬라세포에 끼어든 이 바이러스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헬라세포의 p53 단백질의 기능을 방해해 무한 증식을 가능케 한다고 추측했지요.

그래서 헬라세포는 돌연변이가 심해져도 끝없이 분열하고 증식해요. 연구 결과 정상적인 인간의 염색체는 총 46개인데, 헬라세포의 염색체는 76∼80개나 되었어요. 이 중 비정상적인 염색체는 22∼25개로 드러났죠.

○소아마비부터 에이즈까지, 사람을 구하다!

1951년 이후 헬라세포는 생물학의 전 분야에서 사용되었어요. 그중 하나는 암 연구예요. 1984년 바이러스 연구자인 독일의 하랄트 추어 하우젠은 헬라세포에서 HPV18의 흔적을 찾았어요. 이 발견으로 그는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해요.

생물학자들은 헬라세포를 HPV는 물론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을 일으키는 HIV, 홍역, 지카 등 다양한 바이러스에 감염시켰어요. 특히 헬라세포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공헌했어요. 헬라세포가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어 백신의 안전성을 시험하는 데 편리했거든요. 덕분에 현재는 소아마비가 거의 퇴치됐죠. 헬라세포는 극한 환경 연구에도 쓰였어요. 방사능의 영향을 알아보려고 핵폭발에 노출시키는가 하면 1960년에는 우주에서 세포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우주로 보내기도 했죠.

‘내 몸에서 나온 세포의 주인은 누구일까?’ ‘내 몸에서 나온 세포를 허락 없이 가져가서 실험해도 괜찮은 걸까?’

랙스가 살았던 시절에는 세포 연구가 막 시작되는 단계라서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이 나와 있지 않았어요. 답은커녕 문제 제기도 되지 않았죠. 환자나 가족에게 연구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내용을 알려주면 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연구자들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헬라세포와 비슷한 사례가 더 생기기도 했어요. 미국 터스키기 연구소는 1932∼1972년 가난한 흑인 600여 명을 대상으로 매독균을 주사하는 실험을 했어요. 연구자들은 어떤 병균을 주사하는지, 어떤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지 피실험자들에게 전혀 얘기해주지 않아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죠.

지금은 생물학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여러 법과 제도가 정비되었답니다. 1970년 미국의 생화학자인 밴 렌슬리어 포터 교수가 ‘생명윤리’라는 표현을 퍼뜨리면서 주로 생물학이나 의료 발전으로 생겨나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명윤리라는 학문이 생겨났답니다.

이창욱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changwoo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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