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수술대 오른 실손보험…보험금 많이 타면 보험료 더 낸다[인사이드&인사이트]

장윤정 기자 , 김형민 기자 입력 2020-11-16 01:00수정 2020-11-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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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4세대 실손보험’ 추진
3400만 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고 있는 실손보험이 또 한 차례 수술대에 오른다. 금융당국이 2009년 표준화실손보험, 2017년 착한실손보험을 도입한 데 이어 또다시 실손보험 상품구조를 변경키로 한 것이다. 이른바 ‘4세대 실손보험’을 선보이는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사전 공개한 밑그림에 따르면 이번 4세대 실손보험의 핵심은 보험금을 많이 타는 사람은 그만큼 보험료를 많이 내게끔 하는 차등화다. 한 번 사고가 나면 보험료가 껑충 뛰는 자동차보험처럼 의료쇼핑을 즐기며 보험금을 많이 탔다가는 보험료가 대폭 오르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실손보험 손해율이 치솟자 보험사들이 아예 판매를 중단하는 등 실손보험이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맞자 당국이 내놓은 해법인데, 이번 개편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 많이 쓰면 많이 내는 식으로 또 바뀌는 실손보험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 4세대 실손보험 상품 개편방안을 내놓는다는 계획 아래 현재 손보업계, 보험연구원 등과 상품구조 개편을 위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4세대 실손보험의 대략적인 틀은 지난달 27일 열린 실손보험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공개됐다. 이날 보험연구원은 △보험료 매년 할증 혹은 할인 △자기부담금 상향조정 및 급여·비급여 보장 구분 △재가입주기를 현행 15년에서 5년으로 단축 등을 제안했다.

현재 실손보험은 자주 병원에 들러 적극적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가입자나, 돈만 내고 묵혀두는 가입자나 보험료에 차이가 없다. 보험에 신규가입하거나 갱신할 때 성별, 연령별, 상해등급별(직업위험별 3개 등급) 정도의 변수만 반영해 보험료를 산출할 뿐 개인별 이용률이 보험료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기왕이면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심리로 불필요하게 병원을 자주 찾아 진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가입자가 적지 않다. 병원들도 실손보험 가입자들을 겨냥해 “비타민 주사를 맞으라”, “백내장 수술도 실손보험으로 가능하다”며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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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아이디어가 보험료 할증 또는 할인이다. 보험금을 과도하게 타내는 이들에게 할증으로 보험료를 확 높이면 과잉 진료를 막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신 다수의 선량한 가입자들에게는 보험료를 일부 깎아주자는 구상이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할증 단계를 5구간으로 나누면 보험금을 많이 탄 가입자 상위 0.4%의 보험료가 최대 4배까지 오르는 등 전체 가입자의 2%만 보험료가 올랐다. 반면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71.5%는 보험료가 낮아졌고, 병원을 가긴 가지만 빈도수가 적은 26.5%는 보험료가 그대로였다. 이를 9구간으로 나누면 전체 가입자의 17.1%가 보험료가 할증된다.

보험연구원은 이 밖에도 보장 구조를 필수적 치료 성격의 ‘급여’와 선택적 의료성격의 ‘비급여’로 구분해 운영할 것도 제안했다. 급여는 주계약으로, 비급여는 특약으로 분리해 보험료를 각각 산출하고 보험료 차등제는 비급여에만 적용하자는 것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착한실손보험으로 개편하면서 비급여 중에서 과잉진료가 많았던 도수치료, 주사료, 자기공명영상진단 등 3개 항목을 특약으로 빼냈지만, 여전히 나머지 비급여는 기본형에 포함돼 있다”며 “백내장 수술, 비타민 주사제 등 일부는 기본형에 묶여 있다 보니 보험료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10∼20%인 자기부담률을 급여의 경우 20%까지, 비급여의 경우 30%까지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나왔다.

○ 실손보험 시장 어떻기에
실손보험 제도개선 필요성에는 업계나 전문가들이나 모두 공감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나머지 영역, 즉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이 필수 보험으로 애용돼 왔지만 보험사들이 높은 손해율에 시달리며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맞았기 때문.

실손보험은 보험사에 매년 적자를 안겨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병원 이용을 자제했음에도 손해율이 131.7%다. 보험 가입자로부터 보험료 100원을 받으면 131.7원이 보험금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전체 손실규모는 1조4000억 원이다. 2009년 10월 표준화실손보험, 2017년 4월 착한실손보험 등 상품구조를 바꿔봤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착한실손보험의 손해율도 2017년 4월 출시 이후 빠른 속도로 상승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100%를 넘어선 상태다.

누적된 적자는 점차 소비자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 우선 실손보험 판매를 포기하는 보험사가 생겨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DB생명. 라이나생명. 오렌지라이프 등 11개 보험사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가입연령 한도를 낮추는 곳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생명은 실손보험 가입연령 상한선을 70세에서 60세로 낮췄다. 5월에는 한화생명이 65세에서 49세로, 동양생명은 60세에서 50세로 내렸다. 롯데손해보험은 21세 이상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방문 진단검사’를 거친 뒤 가입할 수 있도록 절차를 까다롭게 변경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혈압을 재고, 피를 뽑고, 소변 검사도 해야 한다. 가입연령을 높이고, 절차는 번거롭게 만들어 신규 가입자를 최대한 덜 받으려는 계산이다. 보험사들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데 어찌하겠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가입자 간의 형평성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소수의 과도한 보험금 청구 때문에 선량한 대다수의 가입자까지 덩달아 보험료 인상부담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입원’의 경우 2018년 기준 보험금을 전혀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는 전체의 90.5%에 이른다. ‘외래 진료’ 역시 무청구자가 전체의 69%였다.

○ 이번에 개편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다면 4세대 실손보험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금융위는 4세대 실손보험의 보험료 인하폭이 평균적으로 ‘표준화 실손보험’(2009년 10월∼2017년 3월 판매) 대비 약 40∼50%, ‘착한실손보험’(2017년 4월 이후 판매) 대비 10%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가입자의 환승도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존 상품의 메리트가 분명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병원 이용이 많지 않은 가입자의 경우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 큰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갈아타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4세대 실손보험을 향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필요한 조치이긴 하지만, 지속가능한 실손보험 체계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평가다. 매년 실손보험이 적자를 보는 근본 원인은 ‘기존 가입자’인데 4세대 실손보험은 내년 출시 후 새로 가입되는 신규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舊)실손보험(2009년 10월 이전 판매)과 표준화실손보험 계약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하는 상황에서 기존 상품을 손대지 않고, 4세대 실손보험을 내놓아봤자 적자 구조 개선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존 가입자들의 갈아타기도 한정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과거에 가입해 놓은 실손보험이 자기부담금 등에서 훨씬 좋은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앞서 착한실손보험이 출시됐을 당시에도 갈아타기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보험업계는 적자 구조의 실손보험 체계를 바꾸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험료 인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혹여 4세대 실손보험 출시가 기존 상품의 보험료 인상을 막는 구실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매년 초 보험사는 실손보험료 인상수준을 두고 금융당국과 실랑이를 벌여오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 인상을 못하는 보험사에 선심성으로 내놓는 대책에 불과하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4세대 실손보험의 차등제 자체에 대한 불만과 우려도 존재한다. 뜻하지 않게 병원을 많이 찾게 된 가입자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보험료 할증폭탄까지 맞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국은 가입자의 의료접근성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도록 불가피한 의료이용자는 보험료 차등제 적용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기준과 범위는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4세대 실손보험이 나오더라도 추가적인 조치가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로 데이터를 축적해 과잉진료를 일삼는 의료기관을 걸러내고, 실손보험을 중심으로 한 보험사기에도 강력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보험사기 근절을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이성림 성균관대 교수는 “병원에 가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실손보험 가입 여부”라며 “전 국민을 보험사기에 가담하게 한 현재의 왜곡된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의료쇼핑’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해법은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장윤정 yunjng@donga.com·김형민 기자
#인사이드&인사이트#실손보험#보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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