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유학때 주말마다 성지순례… ‘전설의 로마 가이드’로 불렸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책 ‘유스티노 신부의 치유의 순례기’ 펴낸 김평만 신부

20여 년 전 인연을 맺은 성당 주일학교 교사들과 함께한 순례기를 출간한 김평만 신부. 배경의 캐릭터 그림은 평소 농업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김 신부에게 의료원 직원들이 선물한 것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0여 년 전 인연을 맺은 성당 주일학교 교사들과 함께한 순례기를 출간한 김평만 신부. 배경의 캐릭터 그림은 평소 농업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김 신부에게 의료원 직원들이 선물한 것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에게는 몇 가지 길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농부를 꿈꿨다. 고교 1학년 때 A.J.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를 읽고 사제의 길을 걷고 싶어 신학교 진학을 원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결정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신부의 조언으로 1983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집안에서는 학자의 삶을 권했지만 군 복무 뒤 그의 길은 더욱 확실해졌다. 1990년 뒤늦게 가톨릭대 신학과에 입학하고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이자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인 김평만 신부(57·세례명 유스티노) 얘기다. 김 신부는 최근 ‘유스티노 신부의 치유의 순례기’를 펴냈다. 보좌신부 시절 인연을 맺은 신자들과 함께한 11일간의 이탈리아 치유 여행을 담았다.

―주임신부도 아닌 보좌신부였는데 20여 년 인연이 이어졌다.

“3년간 보좌신부로 있다 6년간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곧바로 의료원으로 왔다. 그러니 본당 주임신부 경험이 없다. 젊은 시절, 옛 서울 수유동 본당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좋은 기억이 있었는지 본당이 없는 저와 1년에 몇 차례 교류가 이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순례여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올 2월 초 귀국했는데 2주 뒤 팬데믹으로 번졌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만난 분들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등져 마음이 아프다.”

―책을 출간한 계기는….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귀국하고 개학이 늦어져 6주 정도 여유가 생겨 기록을 정리하게 됐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인 모임(솔봉이)의 어머니들을 돕고 싶었다. ‘자식이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 출간도 자활센터 건립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의미가 있다.”

―‘전설의 로마 가이드’였다는데….

“유학 시절 은사가 예수회 후라도 신부님이다. 그분 가르침이 사제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마다 제자들과 로마의 성당, 성지 순례를 했다. 유학 중인 분들이 대부분 언어와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휴식을 원했는데 저는 순례가 적성에 맞았다. 로마 구석구석을 다닌 덕분에 나중에 제가 가이드한 분들로부터 과분한 찬사를 받게 됐다.”

―로마의 정신적 유산은 무엇인가.

“로마는 인류사를 대표하는 정신적 유산의 보고다. 자치도시에 있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로마인의 광장. 정치 상업 종교 시설이 밀집된 곳)’는 세상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라틴어 레푸블리카(Republica)에서 유래한 공화정은 시민의 참여로 공적인 일을 하는 정치구조다. 소통과 참여 시스템이야말로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 된 원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세 곳을 꼽는다면….

“먼저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작품으로도 훌륭하지만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한다. 다음으로 2000년간의 로마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클레멘스 성당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흔적이 가득한 아시시다.”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면, 하느님을 우리 영혼에 모시기 위해서는 ‘세속과 거리 두기’ ‘영성적 거리 두기’도 필요하다. 청빈 정결 순명으로 상징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오늘날 환경과 불평등의 문제, 청년과 공동체의 위기가 심각하다. 경제학을 전공해 근대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의 장단점을 두루 접했다. 사제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경제학’을 주제로 책을 낼 계획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성지순례#로마 가이드#김평만 신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