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캔버스엔 제주 바람이 휘몰아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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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전 가나아트센터서 16일부터 열려
日서 귀국후 1975년 고향 정착
화단 멀리하며 독자적 세계 구축
거친 붓질로 ‘폭풍의 화가’ 명성

변시지, ‘태풍’, 1982년, 캔버스에 유채, 182×228cm. 가나아트센터 제공
변시지, ‘태풍’, 1982년, 캔버스에 유채, 182×228cm. 가나아트센터 제공
변시지 화백(1926∼2013)은 1975년 제주도로 귀향한 뒤 황토빛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림을 본 일본인 화랑 대표는 변 화백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식의 그림은 일본 시장과 맞지 않으니 더 이상 거래가 어렵겠습니다.”

지금까지 거래해온 것에 대한 인사치레의 돈 봉투를 끝으로 그림을 더 이상 사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변 화백은 꿋꿋이 자신만의 언어를 전개해 나갔다. 제주의 산방산, 형제섬을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거친 붓질로 담아낸 그림들은 그에게 ‘폭풍의 화가’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다. 이 시기 그려진 주요 작품 40여 점을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는 ‘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난 변 화백은 다섯 살 때인 1931년 가족과 일본으로 이주했다. 1945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대 교수 데라우치 만지로(1890∼1964)의 문하생이 되어 서양 근대미술을 배웠다. 1948년 당시 일본 아카데미 화단의 주류였던 ‘광풍회’전에서 23세로 최연소 수상하고 이듬해 심사위원을 맡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보통 50대 이상이었다.

1957년 귀국한 뒤에는 창덕궁 비원(후원)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때만 해도 후기 인상주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는데, 국내에 머물러도 일본의 화랑에서 꾸준히 전시를 하며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고향으로 돌아가 화단이나 시장과도 멀리한 채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추구해 나간 것이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실험 과정을 볼 수 있다. 특히 평소 즐겨 쓰던 노란색뿐 아니라 흰색, 흑색, 녹색, 적색 등 다양한 색을 사용했다. 그의 미세한 색 터치는 도록으로는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시기 작품이 변 화백 작고 후 이 정도 규모로 서울에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가 국내 화단과도 가깝게 지내지 않고, 또 제주 시절 그림은 일본에서도 외면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림에서는 세상과 단절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 과정에서 느낀 심상이 전해진다. 11월 15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변시지 화백#시대의 빛과 바람 전#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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