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목이 말라♬… 37년만에 냉장고 아닌 ‘시간의 문’ 열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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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규앨범 ‘門’ 낸 가수 김창완
DIY 방식으로 제작… 11곡 수록 앨범
1983년 솔로 앨범과 음악적 맞닿아
통기타 등 악기 대부분 홀로 연주

14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김창완 씨는 “‘자장가’는 ‘가이아’(1995년) 이후 다시 한번 인류에게 바치는 노래로, 신작에서 가장 무겁고 간절한 곡이다. 아가는 인간이고 품은 지구다. 강퍅한 세상에 처한 우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4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김창완 씨는 “‘자장가’는 ‘가이아’(1995년) 이후 다시 한번 인류에게 바치는 노래로, 신작에서 가장 무겁고 간절한 곡이다. 아가는 인간이고 품은 지구다. 강퍅한 세상에 처한 우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금 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네요. 어쩜 이렇게 한 치도 더 크지 못했는지….”

김창완 씨(66)가 통기타와 DIY 방식으로 만든 37년 만의 새 정규앨범 ‘門’(18일 음원 및 CD 발매)으로 돌아온다. 같은 방식으로 제작한 솔로작 ‘기타가 있는 수필’(‘어머니와 고등어’ 수록)을 낸 게 1983년. 11곡을 담은 신작 ‘門’의 부제는 ‘시간의 문을 열다’다.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김 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두서너 번 끄덕였다.

“시간이란 객관화할 수 없는 건가 봐요. 그것이 흐른다는 것, 멈춘다는 것. 이게 모두 착각일 뿐인지도…. 시간의 본질을 아는 것이 곧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첩경일는지 모르겠어요.”

37년 전 ‘어머니와 고등어’에서 냉장고 문을 열던 29세의 신혼 김창완이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2020년에 새삼 다시 열어본 시간의 문 안쪽엔 무엇이 있었을까. 연년의 켜가 채운 충만함보다는 차라리 텅 빈 냉장고 같은 허허함인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채우려야 채울 수 없는 밑이 빠진 독이랄까. 아니면 넘쳤기에 비워진 계영배(戒盈杯) 같은 잔일지도.

1983년 발표한 ‘기타가 있는 수필’(왼쪽)은 신작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1983년 발표한 ‘기타가 있는 수필’(왼쪽)은 신작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기타가 있는 수필’은 당시 마장동 스튜디오에 통기타 하나 들고 들어가 세 시간 반 만에 원테이크로 녹음을 마쳤죠. 이번에도 다르지 않아요. 미리 발표했던 곡을 빼고 새로 작업한 여섯 곡은 두 시간 만에 녹음하고 나왔어요.”

그렇게 따지면 서울 성동구 녹음실 문을 열고 들어간 지 근 40년 만에 마포구 톤스튜디오의 문을 이제야 뒷목 긁으며 연 것인지 모른다. ‘보고 싶어’의 트럼펫, ‘옥수수 두 개에 이천 원’의 하모니카 소리는 기타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손수 만들어냈다. 신작에서 유일하게 보컬 합창과 제창이 나오는 ‘글씨나무’마저 보컬 하모나이저 이펙터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분신처럼 나눠 녹음했다. ‘먼길’의 첼로(양지욱), ‘시간’의 반도네온(고상지)을 제외하면 모두 김 씨의 연주인 셈이다.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오토튠(녹음 뒤 부정확한 음정을 인위적으로 완벽하게 조정해주는 장치)을 써본 적 없다. 신작도 마찬가지.

“제프 쿤스가 ‘풍선 강아지’에서 보여줬듯 맨질맨질함(반질반질함), 완벽함은 현대인의 환상일 뿐이잖아요. 신작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세상을 향한 반란일 수도 있어요. 제 나름의 불만을 거침없이 거칠게 쏟아낸 앨범이에요.”

‘보고 싶어’에서는 민요 ‘한오백년’의 멜로디를 기타로 연주했다.

“저희 아버지가 ‘고향무정’을 부르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 비슷한 저의 심정을 담아봤어요.”

가사가 필요 없는, 멜로디가 건네는 이야기는 첫 곡이자 연주곡인 ‘엄마 사랑해요’부터 작렬한다.

“앨범 표지를 그려준 이 화가가 모친이 돌아가시기 전에 매일 어머니를 스케치했다더라고요. 매일 똑같아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의 선으로 그려내듯, 저도 단번에 기타 멜로디를 만들어갔어요.”

‘나이 든 여자가 다가와 앉아도 되냐고 물었지/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노인의 벤치’ 중)

신곡 ‘노인의 벤치’에서 김 씨는 37년 전 곡 ‘꿈’(토크송)의 자신과 문 너머로 교신한다. ‘꿈’에서 왕자와 공주의 동화를 동경했던 화자, 김창완은 “다시 한번 아주 예쁜 동화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2016년 싱글로 먼저 낸 신작 수록곡 ‘시간’은 따라서 이제야 그 진면모를 드러낸다.

‘유치한 동화책은/일찍 던져버릴수록 좋아’(‘시간’)는 ‘해피엔딩은 동화에나 있는 얘기’라는 체념이나 훈계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 반대였다.

“아름답거나 영원한 사랑은 상상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현실의 이 사랑이 동화책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 게 37년 전 ‘꿈’이에요. 신작은 세월이 흐른 뒤 그걸 확인한 목격담인 셈이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창완#37년 만의 새 정규앨범#시간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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