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 위해 종교인들도 한배를 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
신흥종교 간 갈등-연대 분석
“3·1운동 때 기독교-천도교 연합… 화합없는 현재의 종교 돌아봐야”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가 24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저서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를 들어 보였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가 24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저서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를 들어 보였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독립을 위해 3·1운동 당시 천도교와 기독교가 연대했던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요즘엔 다른 종교 간 서로 폄훼하거나 적대시하는 모습뿐, 연대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푸른역사)를 펴낸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65)는 1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일어난 신흥종교의 관계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천도교와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상극이지만 독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배를 탔다는 점에 의미를 둔 것이다. 이 교수는 2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3·1운동의 교훈처럼 오늘날도 종교 간 연대할 수 있는 것들은 연대하며 사회적 의제를 찾고,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동학농민운동 직전인 1893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 26년간 기독교와 천도교의 갈등과 연대의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천도교가 기독교와 천주교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공통점이 늘어나면서 3·1운동에서 연대하는 바탕이 됐다고 봤다. 이 교수는 “천도교가 동학사상과 이별하고 근대 종교로 탈바꿈을 시도하면서 기독교의 문명개화 노선과 맞닿았다”며 “천도교에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유사한 ‘한울님’의 개념이 있었고, 기독교와 천주교를 모방하며 예배, 교회당 건축, 전도 형식을 도입해 공통점이 늘어났다”고 했다.

두 종교는 당시 교세가 크게 성장했던 평양, 의주, 선천, 정주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함께 진행했다. 이 교수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이 기독교(16인), 천도교(15인), 불교(2인) 신자로 이뤄져 있던 것만 봐도 3·1운동은 국내 종교 연합 운동의 효시로 볼 수 있다”며 “1919년 3, 4월 전국 만세운동의 절반 이상은 기독교와 천도교가 주도한 것”이라고 했다. 또 “천도교는 현실 세계의 안녕을 추구하며 ‘지상천국’ 건설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사회운동에 적극적이었다”며 “내세를 중시하는 기독교는 천도교를 이단으로 취급해 연대를 거부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민족의 위기 앞에 함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두 종교의 연대는 1919년 이후에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 교수는 “3·1운동 이후에도 독립이 너무 요원했고, 교단은 일제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3·1운동 이후 기독교와 천도교의 민족운동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20년대 일제가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종교단체의 집회를 허용했다”며 “당시 종교운동은 곧 사회운동이 됐다. 두 종교의 교단사가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핵심으로 봐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종교 화합#종교운동#3·1운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