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한입 한입 흑임자빙수 달콤한 팥과 어우러진 깊고 고소한 여름별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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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이 넘치는 집’의 흑임자빙수. 임선영 씨 제공
‘강정이 넘치는 집’의 흑임자빙수.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작가
임선영 작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큰길가에 정겨운 카페가 있다. 언뜻 보면 일반 가게인데 문 열고 들어가면 한옥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대청마루 소반 주변에 둘러앉아 떡과 과자, 전통 차와 빙수를 먹는다. 카페 ‘강정이 넘치는 집’은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병과점(餠菓店)이다. 강정 유과 인절미와 약식 송편 등을 만드는데 대부분 재료는 국산을 고집한다. 청년 셰프들은 전국 산지를 다니며 풍미와 영양이 살아있는 찹쌀 팥 콩 과일 등을 확보한다. 설탕 대신 꿀이나 조청을 쓰고 방부제나 첨가제는 일절 넣지 않는다. 식사 대용인 강정, 쫄깃한 콩 인절미, 흑임자 인절미 등이 유명하고 쌍화차도 인기 높다.

여름에는 놋그릇에 봉긋하게 담긴 흑임자빙수가 제격이다. 빙수 한 그릇에 절정의 맛과 영양을 담기 위해 매일 새벽 방앗간에서 흑임자를 볶고 곱게 제분한다. 동틀 무렵 가마솥을 걸고 4시간가량 팥을 뭉근하게 쑨다. 이때 온도를 잘 맞춰야 국산 팥의 달콤 쌉싸래한 풍미와 통통 터지는 팥알의 식감을 살릴 수 있다. 다음으로는 팥 위에 올릴 정과를 마련한다. 밤은 삶은 후 꿀에 쫀득하게 조려내고 대추는 바삭바삭 칩을 만든다. 빙수의 무게감을 잡아줄 흑임자 인절미도 중요하다. 국산 찹쌀을 빚어 갓 볶아낸 흑임자가루를 묻히면 깊고 고소한 풍미를 낼 수 있다. 그때쯤이면 특별 주문한 빙수용 얼음이 도착한다. 깨끗한 물로 만들고 위생적으로 관리돼 믿고 쓴다. 이 모든 재료는 딱 하루 쓸 만큼 마련한다. 요즘은 눈꽃빙수가 대세지만 이곳은 얼음 빙수를 고집한다. 더욱 예스러울 뿐 아니라 흑임자와 팥 맛이 청량하게 녹아들기 때문이다.

카페 한쪽에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쓴 목재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창조해 내면서도 근거가 있다’는 의미다. 한국 전통 디저트를 만들면서 가슴에 새기는 글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작은 강정가게로 시작해 11년이 흘렀다. 일본 프랑스 등 디저트 강국 관계자들도 이곳 강정과 떡 과자를 맛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젊은 셰프들의 목표는 가장 한국적인 디저트를 통해 건강한 식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는 말은 그 시간 동안 꾸준히 검증을 받고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음식의 가치를 전하고 싶다. 그래서 이곳의 레시피는 멈춰 있지 않고 진화한다.

빙수를 한입, 한입 떠먹다 보면 곱게 갈린 흑임자가 얼음물로 섞여 든다. 그 아래는 우유가 기다리고 있다. 얼음이 우유를 담백하게 하고 흑임자에 팥까지 녹아들면 ‘흑임자 라테’가 된다. 냉면 육수를 마시듯 양손으로 놋그릇을 잡고 벌컥벌컥 들이켜면 가슴에 남은 갈증이 시원하게 해갈된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강정이 넘치는 집=서울 강남구 학동로 435,흑임자빙수 1만1000원.
#흑임자빙수#달콤한 팥#강정이 넘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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