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선 그 흔한 茶 아닌 맹물만 마시는 ‘유방암 전문의’

김상훈기자 입력 2020-06-05 17:20수정 2020-06-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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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 교수는 암 정밀의료 사업단의 실무 책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7년 12월 열린 제1차 정밀의료 사업단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고대 안암병원 제공
지난해 60대 초반의 여성 환자가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48·여)를 찾아왔다. 박 교수는 유방암을 전문으로 치료한다. 그 환자는 이미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만 암이 재발했고, 뇌로 전이까지 돼 있었다. 박 교수도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박 교수는 고려대 안암병원이 정부 지원을 받고 진행하는 암 정밀의료 사업단(K-마스터)의 실무 책임자다. 암 정밀의료는 유전자를 활용해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 이 사업의 실무 책임자답게 박 교수는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한 뒤 최적의 약을 찾아내 투여했다. 뇌로 전이됐던 암이 사라졌다. 아직 치료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꽤나 낙관적이다.
●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

환자들 사이에 박 교수는 ‘약 박사’로 알려져 있다. 항암제의 특징이며 세세한 부작용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지식을 책에서만 얻은 건 아니다. 직접 경험으로 체득했다. 박 교수 또한 항암제를 먹었으며, 재발까지 경험한 암 환자다.

의대 본과 2학년 시절인 1993년, 세부 전공을 결정할 때였다. 당시만 해도 암 치료법이 다양하지 않았고, 수술에 생사가 달렸다. 5년 생존율도 아주 높지는 않았다. 박 교수는 암 치료의 미래를 종양학에서 찾기로 했다. 지금의 진료과를 택한 배경이다.

1년 후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암 판정을 받았다. 암의 종류를 밝히지 않은 박 교수는 “다소 공격적이고 5년 생존율도 비교적 낮은 암”이라고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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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늘의 뜻인가?”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예측한 것도 아닌데, 1년 전 선택한 전공이 자신의 진료에 도움이 되는 분야였던 것이다. 박 교수는 이후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2000년경에는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2013년 재발했다. 그래도 박 교수는 씩씩하게 투병 중이다. “암 진행 속도가 상당히 느려 생활에 큰 지장은 없어요.”

박 교수는 그 자신이 암과 싸우고 있기에 암 환자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안다. 박 교수는 진료실에서 그 흔한 차도 마시지 않는다. 맹물만 먹는다. 이 또한 환자의 심리를 의식해서다. “암 환자들은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아요. 내가 특정 차를 마시면 그 차가 몸에 좋을 거라 지레짐작해서 그 차를 마셔요. 그러니 아무 차나 마실 수 없죠.”
● 종양백신 연구에 전념

환자의 처지에서 암을 들여다보니 재발과 전이가 가장 큰 과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환자는 재발하지 않고 오래 사는데, 어떤 환자는 치료 결과가 좋았는데 재발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종양백신’에 주목했다. 2004년 박 교수는 미국의 종양백신 전문가를 무작정 찾아갔다. 2년의 연구를 마치고 귀국한 뒤 현재까지 종양백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은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한다. 예방 접종을 하면 중증 독감으로 악화할 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같은 이치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종식도 결국에는 백신에 달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암에 적용한 것이 종양백신이다. 종양백신은 어떻게 작용할까. 먼저 암 세포에서 많이 발견되는 단백질의 일부를 주사로 투입한다. 그러면 이 단백질과 싸우기 위해 T세포라는 면역 세포가 발생한다. 단백질이 ‘항원’, T세포가 ‘항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암과 싸우는 면역 세포를 늘림으로써 암을 죽이거나 재발을 막는 것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면역항암제는 이와 좀 달라서, ‘지친 면역 세포’를 활성화시켜 암과 싸우도록 하는 원리다.

종양백신은 항암제의 부작용인 독성도 적고, 약제비도 덜 든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셈인데, 현재는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는 주로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유방암을 비롯한 일부 암에서만 사용되는 점도 한계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전망은 좋아 보인다. 일단 미국에서는 여러 암에 쓸 수 있도록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박 교수 또한 국내 바이오 벤처와 함께 이 기술을 연구 중이며 올 하반기에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교수는 “유방암 분야에서 종양 백신이 성공하면 다른 암 분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암의 재발과 전이를 막는 종양백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암과 투병 중인 의사다. 이 때문에 암 환자들의 심리와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대 안암병원 제공
암 판정을 받으면 환자의 대부분은 극심한 공포에 빠진다.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바로 이 공포심부터 극복해야 치료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병을 고치는 의사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잖게 투병 의지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암 투병 중이기도 한 박 교수에게 ‘슬기로운 환자 생활’을 들어봤다. 박 교수는 크게 세 가지를 강조했다.

①현재를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하라

박 교수는 “슬기로운 투병의 첫 번째 단계는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투병 의지가 강해지고,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암 뿐 아니라 모든 중증 질환에서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환자들의 치료 효과가 좋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암 환자들을 보면, 가족을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직장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을수록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②가족과의 소통-리셋 노력해야


환자 홀로 암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사가 이끌고 가족 혹은 지인이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박 교수는 환자 진료를 할 때에도 가급적 가족을 동반하도록 한다. 박 교수는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암 치료에 정말 좋은 약이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생을 리셋(reset)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마음 관리가 중요하단다. 예민할수록 암에 걸리기도 쉽고, 암 환자들 또한 실제로 예민하다. 박 교수는 “화를 줄이고 일과 돈 욕심을 줄여야 암의 재발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③적절한 체중 유지와 운동이 필수

암 재발을 막는 비법을 묻는 환자들에게 박 교수는 “그런 특효약은 없다”며 “올바른 식습관과 규칙적 운동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특히 유방암과 같은 여성 암의 경우 대사 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반드시 적절한 운동을 해 줘야 한다.

운동을 시도했다가 포기하는 환자가 적잖다. 박 교수는 “굳이 헬스클럽에서 전문적 트레이닝을 받지 않아도 된다. 매일 언제든 할 수 있는 운동을 구체적으로 하라”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계단을 이용하거나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산책을 한다. 몇 년 전부터 휴대폰에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놓고 체크한다. 지난해 1년 동안 매일 평균 9800보를 걸었다. 박 교수는 “반짝 하는 운동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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