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 소방관 돼… 이 옷 입고 소방학교 간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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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소방관 3명 2일 현충원 안장

흐느끼는 소방관 남편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시 국도에서 목줄이 풀려 돌아다니는 개를 구하려다 
교통사고로 숨진 소방관 3인의 합동분향소에서 김신형 소방교 남편이 오열하고 있다. 영정사진 앞에 이들에게 추서된 옥조근정훈장이 
놓였다. 아산=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흐느끼는 소방관 남편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시 국도에서 목줄이 풀려 돌아다니는 개를 구하려다 교통사고로 숨진 소방관 3인의 합동분향소에서 김신형 소방교 남편이 오열하고 있다. 영정사진 앞에 이들에게 추서된 옥조근정훈장이 놓였다. 아산=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 옷 입고 소방학교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지난달 31일 충남 아산시 온양병원 장례식장. 전날 도로에 풀린 개를 구조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했다가 화물차에 치여 숨진 소방 교육생 문새미 씨(23·여)와 김은영 씨(30·여)의 유족들은 유품을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이날 문 씨 빈소에는 50L 크기 플라스틱 박스 세 개와 작은 더플백 하나가 도착했다. 그 속에는 문 씨가 소방학교에 들어가는 날 곱게 차려입었던 트렌치코트가 있었고, 유족들은 이를 보고 눈물을 쏟았다. 분홍색 일기장에는 예비 소방관의 빽빽한 고민과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이 쓰여 있었다. 임용예정일인 13일에는 ‘(소방학교)졸업식’이라고 특별히 표시를 해뒀다. 문 씨가 세운 올해의 목표는 월급으로 부모님 용돈 드리기였다.

김 씨의 유품 속 출동일지에는 환자 이름과 증상, 복용 약물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늦게까지 진료하는 병원’ 목록을 만들고 병원 간 걸리는 시간까지 꼼꼼하게 적어뒀다. 소방학교 동기생 ‘보건부장’답게 누가 어디가 아프고, 무슨 약을 먹었는지까지 기록한 천생 소방관이었다. 몇 번 써보지 못해 빳빳한 소방모자는 주인을 잃고 홀로 돌아왔다. 김 씨의 어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포기하라고 해도 10년이 걸려 기어코 소방관이 되더니…”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가족들은 이날 아산소방서 소속 소방관들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았다. 사고 지점 철조망에는 하얀 국화 서른 송이가 띄엄띄엄 꽂혀있었다. 동료들이 헌화할 수 있도록 국화 바구니를 가져다 뒀다. 유족들은 빨간 소방차 페인트 자국이 선명한 구겨진 가드레일을 침통한 표정으로 매만졌다. 도로에 남은 혈흔 자국 위에 국화를 올려두고 흐느끼기도 했다. 반파된 소방펌프차와 화물차를 살펴보고는 경찰에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순직한 두 교육생과 김신형 소방교(29·여)의 합동분향소에는 주말 동안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근조 리본을 단 소방공무원들이 분향소를 많이 찾았다. 이들은 동료를 잃은 슬픔에 깊게 흐느꼈다. 1일 입관을 지켜보던 유족들은 오열하다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기도 했다.

세 소방관에게는 지난달 31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2일 발인과 영결식을 마치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다만 두 교육생에게 ‘순직공무원’ 지위가 인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소방교는 현직 소방관이라 1계급 특진과 순직공무원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두 교육생들은 정식 소방관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순직공무원 처분 근거를 찾고 있다. 문 씨의 아버지는 빈소를 찾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에게 “우리 공주들 정복 한번 입혀줘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하며 순직자로 인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의 오랜 친구라고 밝힌 여성은 ‘친구의 순직자 인정을 도와 달라’는 청원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충남 아산경찰서는 1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화물차 운전자 허모 씨(62)를 구속했다. 허 씨는 사고 당일 “라디오를 조작하느라 소방차를 못 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확보한 화물차 운행기록계에 따르면 당시 허 씨는 시속 74∼76km로 운전해 과속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생존 소방대원 진술을 받고 사고 경위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산=최지선 aurinko@donga.com·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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