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위, 마오시절엔 보좌기구 전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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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후진타오 집권 시기엔 주요 현안 ‘n분의1’ 투표권 행사
정책 최종결정… 집단지도체제 상징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시절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상징하는 제도였다. 상무위원들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서 ‘n분의 1’의 투표권을 행사했다. 명실상부한 당 최고 정책결정기구였다.

25일 새로 선출된 제19기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의 구성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계열이 3, 4명을 차지해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이 크게 약화된 것처럼 공산당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상무위원회는 그 위상과 역할이 시대에 따라 풍상을 겪었다.

당에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27년 5월 제5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다. 천두슈(陳獨秀) 장궈타오(張國燾) 차이허썬(蔡和森) 3명이 전부였다. 마오쩌둥(毛澤東)도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군에 쫓겨 대장정을 하던 중이던 1935년 1월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議)의 제6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중앙서기처 서기 겸 상무위원에 오르면서 최고 실력자가 됐다.

신중국 이후 마오가 ‘당 주석’으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상무위는 부주석 및 약간 명의 상무위원으로 구성된 보좌기구로 전락했다. 덩샤오핑(鄧小平)도 ‘군사위원회 주석’이라는 직함만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상무위원 수는 문화대혁명 초기 11명까지 늘어나기도 했지만 후 전 주석 시절 9명으로 늘었다 시 주석 집권 후 7명으로 줄었다. 상무위원에 한족 외의 소수민족이나 여성은 진입한 적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장쩌민#후진타오#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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