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K스포츠에 돈 싸들고 간 기업들 목적은 법인세 인상 저지?

  • 주간동아
  • 입력 2016년 10월 23일 0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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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년도 예산안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10월 19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년도 예산안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20대 국회 국정감사(국감)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단식으로 시작됐다. 집권여당 대표의 사상 초유 단식에 일주일 동안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다. 이 대표가 단식한 이유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직권상정한 정세균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 요구였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단식에 돌입하기 직전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조찬에 참석해 “나는 경제를 잘 모른다. 하지만 법인세 인상은 꼭 막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표의 단식을 두고 장관 해임건의안 직권상정이라는 지나간 일을 매개로 앞으로 예상되는 법인세 인상 등 예산부수법안 지정과 관련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수단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고 새누리당이 국감을 보이콧하면서 국감은 일주일간 파행했다. 이 대표는 정 의장 사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일주일 만에 단식을 풀었고, 국감은 정상화됐다.

국감 내내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등 야권에서는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비선(秘線)실세’ 의혹을 제기하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 재단법인 미르에는 차은택 씨, K스포츠재단에는 최순실 씨가 주역으로 등장했다. 국감에서 제기된 의혹과 10월 20일 현재까지 나온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CF감독 출신인 차씨가 문화계 황태자로 세간의 주목을 끈 데는 2014년 8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것이 계기가 됐다. 야권 인사들은 차씨가 문화융성위원으로 발탁된 배경에 박근혜 대통령과 40년 지기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와 친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미르는 차은택, K스포츠는 최순실 몫?

9월 2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조찬강연회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뉴스1]
9월 2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조찬강연회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뉴스1]
2014년 8월 차씨가 문화융성위원으로 임명된 이후 차씨 주변 인물들은 문화계 주요 포스트에 하나 둘씩 자리 잡기 시작한다. 차씨의 대학 시절 스승이던 김종덕 홍익대 교수가 2014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에 올랐고, 석 달 뒤 차씨와 가까운 송성각 머큐리포스트 대표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취임했다. 차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는 그해 12월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됐다. 차씨 자신도 2015년 4월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 산하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 올랐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차씨가 역임한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은 1급 고위공무원에 해당한다.

차씨가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맡고 있던 2015년 10월 재단법인 미르가 설립됐다. 재단 설립 과정에서 문체부 담당 주무관이 세종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출장 행정’을 펼친 사실이 알려졌다. 법인 설립허가가 통보되기 전 등기 신청이 이뤄졌고, 등기가 완료되기 전 재단 현판식이 열린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재단법인 미르 사무실 계약자로 등장한 그래픽디자이너 김성현 씨 역시 차씨의 지인이었고, 김씨는 재단법인 미르 설립 이후 사무부총장이 됐다.

재단법인 미르가 설립부터 인적 구성까지 차씨 주변 인물이 대거 포진한 것과 달리, K스포츠재단은 최순실 씨가 단독 주역으로 등장했다. 최씨는 1월 K스포츠재단 설립 하루 전날 한국에 설립된 스포츠매니지먼트사 더블루케이(The Blue K)의 ‘회장님’이었고, 한 달 뒤 독일에 설립된 더블루케이는 최씨가 유일한 주주인 회사로 알려졌다. 그뿐 아니라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 씨가 주주고 정씨의 승마 코치가 유일한 직원으로 등재된 스포츠 마케팅업체 비덱이 독일에 설립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덱은 K스포츠재단 관계자가 1월 국내 대기업 중 한 곳을 찾아가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비인기 종목 유망주를 후원하는 사업에 80억 원을 지원해달라”며 “사업은 비덱이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10월 20일자 사설에서 ‘K스포츠와 심지어 정부 부처가 페이퍼컴퍼니 같은 최씨의 개인 회사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은 최씨 뒤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체육을 통한 국위 선양’ 등을 내세워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출연했지만, 사실상 이 재단이 최씨 딸의 독일 현지 훈련을 지원해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돕기 위한 후원단체로 전락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K스포츠재단을 매개로 권력 사유화가 이뤄졌을 개연성을 지적한 것이다.

‘최순실 국감’에 다수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동안 국감 막바지에 혜성처럼 전면에 등장한 이슈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파동이다. 여당은 송 전 장관의 회고록에 담긴 일부 내용(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구실)을 집중 부각하며 문재인 때리기에 적극 나섰다. 새누리당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10월 15일 “대한민국의 일을 북한 정권으로부터 결재받은 것은 국기를 흔드는 충격적인 사태”라며 문 전 대표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부었다

현행 법인세율 22%를 25%로 인상

야권이 군불을 땐 차은택 주연의 재단법인 미르와 최순실 주연의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여권이 송 전 장관의 회고록 파문으로 맞서는 사이 올해 국감은 종료됐다. 여야는 이제 예산안, 특히 법인세 인상안을 둘러싸고 새로운 힘겨루기에 돌입할 태세다. 새누리당이 법인세 인상을 극렬히 반대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법인세 인상안이 부수법안으로 지정되느냐가 초미 관심사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10월 19일 세입예산안 부수법안 지정과 관련해 “직권상정이 아니라 상임위원회에서 합의 처리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현행 국회법은 새해 예산안의 법정 기일 내 처리를 위해 국회의장이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을 지정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즉 여야가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해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예산부수법안을 지정하면 그다음 날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치고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

현재 국회에는 더민주 윤호중 의원과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2건의 법인세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윤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최고세율 25%가 적용되는 과세표준 50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김동철 의원의 안은 과세표준 200억 원을 초과하는 1000여 개 법인에 대해 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환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인세 인상안은 세입과 관련된, 중요한 세입예산안 부수법안 가운데 하나다.

재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 출연금으로 수백억 원을 갹출한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법인세 인상에 달렸다는 점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법인세 인상안은 처리 결과에 따라 기업이 적게는 수천억 원, 많게는 수조 원의 법인세를 더 내느냐, 덜 내느냐가 달린 중요한 이슈”라며 “하반기 국회 운영 상황, 특히 법인세법 개정안 처리 여부에 따라 재계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6년 10월 26일자 10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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