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몽골 학생에게 말 타고 학교 가느냐고 묻는 건 실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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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공공외교단이 말하는 민간 외교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시니어공공외교단 2기 단원으로 활약 중인 박준봉 홍칠선 김현수 최하경 조일연 이화영 씨(왼쪽부터)가 모였다. 오랜 해외생활 경험과 능숙한 외국어로 외국인에게 한국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들의 숨은 노력이 한국 외교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시니어공공외교단 2기 단원으로 활약 중인 박준봉 홍칠선 김현수 최하경 조일연 이화영 씨(왼쪽부터)가 모였다. 오랜 해외생활 경험과 능숙한 외국어로 외국인에게 한국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들의 숨은 노력이 한국 외교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해 11월 22일 이화영 씨(60)는 베트남·몽골 유학생과 함께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이노베이션 박물관과 경기 화성시 융건릉·용주사를 다녀왔다. 한국의 첨단 산업시설과 문화유산을 함께 소개하기 위한 시니어공공외교단의 활동이었다. 이튿날 베트남 유학생으로부터 ‘부모처럼 돌봐줘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씨는 “나라를 넘어 마음이 전해졌다는 사실에 기쁨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와 나라를 위한 봉사라는 생각에 공공외교에 애착이 생겼고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외교전의 최전방에 직업 외교관이 활동하고 있다면, 측면과 후방에는 공공외교단이 불철주야 국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이 씨를 포함해 최하경(71) 홍칠선(69) 김현수(59·여) 박준봉(61) 조일연 씨(61) 등 6명의 시니어공공외교단을 만났다. 외교부가 2013년부터 운영해 온 시니어공공외교단은 기업 주재원, 공무원, 교수, 의사, 요리 연구가 등 다양한 전직을 가진 ‘베테랑’들로 구성됐다.

흔히 외교 하면 외국에 나가 벌이는 활동을 떠올리는데 시니어공공외교단은 철저히 국내활동에 매진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1400만 명을 넘어선 만큼 제 발로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매력을 알리는 활동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능숙한 외국어 구사하며 한국의 매력 알려

이 씨는 수년간 한국씨티은행 해외지점에서 근무하면서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한국이 소프트파워를 키우려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돼야 하는데 대사관이 벌이는 공식 외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조흥은행장 직무대행을 지낸 홍칠선 씨는 은행에 재직하는 동안 중앙아시아 고려인, 중국 옌볜 조선족 등 재외동포에 대한 장학금제도를 운영했다. 홍 씨는 “재외동포를 만나 보니 교포 3세쯤 되면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안타까웠다. 이들에게 한국을 정확히 알리고 싶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했다”고 공공외교단 지원 동기를 밝혔다.

오랜 외국생활 경험을 되살려 공공외교에 나서기도 한다. 최하경 씨는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에서 17년 이상 해외근무를 했다. 50개국 이상 다니던 경험과 외국어 실력을 살려 아리랑 같은 우리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최 씨는 “아리랑 콘서트를 열면 외국인들이 흥얼흥얼 따라 부른다.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소리”라고 말했다.

원래 충주성심학교 특수교육 교사였던 조일연 씨는 한국 최초 농아인 야구부인 성심야구부를 탄생시켰다. 은퇴 이후 스리랑카 초등교육국 사무관으로 파견을 가서 교장으로 일했던 노하우를 150쪽짜리 ‘매뉴얼’로 만들었다.

경희대 치과대학장을 지낸 박준봉 씨는 올해 시니어공공외교단에 합류해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두 차례 의료봉사를 했다. 한국 의료 수준은 이제 베풀 수 있을 만큼 높아졌다. 박 씨는 “1970, 80년대 국내서 반나절 치과 진료를 하면 치아를 반 바가지 정도 뽑을 정도로 구강 상태가 안 좋았다. 요즘 네팔 동티모르 라오스 베트남 등 해외로 치과 진료를 다니면 당시 한국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올해 9월 12일부터 1박 2일간 열린 경남 거창군 종택 및 서원 문화체험 행사에 참여한 주한 외국인 언론인들과 함께한 시니어공공외교단. 이화영 씨 제공
올해 9월 12일부터 1박 2일간 열린 경남 거창군 종택 및 서원 문화체험 행사에 참여한 주한 외국인 언론인들과 함께한 시니어공공외교단. 이화영 씨 제공
한국 홍보가 공공외교 아니다

그렇다면 공공외교란 무엇일까. 시니어공공외교단은 50여 개 활동을 꾸준히 해보니, 한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면 일방적 홍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공공외교는 상호소통이 중요하다는 것.

“10월 7일 성균관대에서 한글날 기념 ‘한국학 학술제’에서 중국 멕시코 스웨덴 등 7개국 유학생이 한국 고전부터 케이팝까지 한국 문화에 대해 발표했는데 한국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더라고요. 한국이 그만큼 다른 나라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죠. 공공외교는 우리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홍칠선)

“한국에서 함께 사는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요즘 걸맞은 시민 의식, 인권 의식이 있는지 점검해 봐야죠. 예를 들어 몽골에서 온 유학생에게 ‘말 타고 학교 가느냐’고 묻는 건 실례예요. 모멸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한류에 매력을 느껴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요. 한국 사람이 선진국 사람에게 친절하고, 개발도상국 사람에게 불친절하지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면 좋겠어요.”(이화영)

공공외교 콘텐츠도 풍부해져야 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한국 문화와 한국 역사를 비타민 먹이듯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성장의 경험’이 새로운 공공외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국을 알린다고 하면 한국 전통 문화를 소개하는 데 치중하죠. 이보다는 우리 의료 사회복지 특수교육 등 우리가 앞서 나가는 분야를 새로운 공공외교 콘텐츠로 활용해야 합니다.(조일연)

“선진국보다는 한국을 롤모델로 삼으려는 개도국에서 공공외교를 확대할 필요가 있어요. 일본에서 공부한 미얀마 공무원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자국의 의대생들을 교육받게 하고 싶다며 방법을 물어보더라고요. 왜 한국이냐 했더니 한국의 속도, 근면, 친절 등 일본과는 다른 장점이 있대요.”(박준봉)

외국에 사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 대한 공공외교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1400만 명을 넘어섰다. 굳이 외국에 나가 많은 예산을 쓰지 않고도 한국의 매력을 알릴 기회가 많아졌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은 그 나라 엘리트예요. 이들을 지한파, 친한파로 키워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4년 공공외교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가나 공무원이 외교부로 돌아가 한국 교회가 학교를 짓는 데 행정적인 도움을 준 적도 있어요.”(이화영)

“주한 외국기자, 파워 블로거와 남한산성을 같이 걷고, 점심 먹고 하루를 같이 보냈는데 외로웠는지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이들의 시각이 곧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되므로 이런 공공외교가 중요하죠.”(김현수)

“아직도 외국에는 한국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삼성이 일본 회사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요. 주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이해시키는 것 정말 중요한 활동입니다. 주한 기업 주재원, 기자, 블로거 등이 한국을 잘못 알면 잘못된 지식이 전파되거든요.”(최하경)

시니어공공외교단은 올해 6월 주한 외국인 K-블로거를 초청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기 수원 화성 탐방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이화영 씨 제공
시니어공공외교단은 올해 6월 주한 외국인 K-블로거를 초청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기 수원 화성 탐방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이화영 씨 제공
외국인이 반하는 한국의 매력은?

시니어공공외교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갈수록 커졌다. 스스로 알지 못했던 한국의 매력이 외국인의 시각에서 재발견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매력으로 ‘한국 사람’을 꼽아요.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이라나. 맛있는 한국 음식도 한국 사람이 만드니까요.”(최하경)

“한국의 대중교통, 인터넷, 건강보험이 부럽다고 해요. 세계에서 서울만큼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가 없어요. 밤늦게 버스나 전철로 이동할 수 있고 인터넷 접속도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데 대해 놀라더라고요.”(김현수)

이들은 지금이 공공외교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시기라고 말했다.

“스리랑카에 ‘코리안 드림’이 있어요. 한국으로 파견될 근로자 8000명을 뽑는 데 몇백만 명이 몰려 도시가 마비될 정도예요. 교류가 없는 볼리비아에도 한류가 대단하고요. 케이팝 등 한류에 열광하는 외국인이 많은 지금이 공공외교를 하기에 대단히 유리한 시점이라고 봐요. (조일연)

“맞습니다. 외국 연예인 간담회를 하는데 한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하더라고요. 꼭 개도국에서 온 연예인만 모인 것도 아니었는데요. 예전에 우리에겐 미국이 ‘기회의 땅’이었는데…. 깜짝 놀랐죠.”(김현수)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본 한국은 단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룬, 기적을 일궈낸 나라예요. 3년 전 우즈베키스탄에 수교 20주년 공연을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공연장 문을 닫아야 했죠. 한국의 위상이 한참 올라가는 지금 브랜드 관리가 필요합니다. 지속적 관리가 안 되면 한류 등이 단명할 것이라고 봐요.”(홍칠선)

현재 시니어공공외교단 2기 37명이 활동 중이다. 안혜정 외교부 문화교류협력과장은 “시니어들은 이미 전문성과 경험이 축적된 데다 열정도 대단하다”며 “한국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시니어공공외교단#민간 외교#공공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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