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미국 ‘菊花 클럽’도 실망한 아베 담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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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의 꽃은 벚꽃이 아니라 국화(菊花)다. 루스 베네딕트의 저명한 일본문화 연구서 ‘국화와 칼’의 국화는 거기서 나왔다. 실제로 존재하는 클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지일파(知日派) 지식인들을 뭉뚱그려 ‘국화 클럽’이라고 부른다. 하버드대 교수로 1960년대 주일 미국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가 국화 클럽의 원조쯤 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첫 국가정보국(ONI) 국장을 지내고 은퇴 후 사사카와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데니스 블레어도 국화 클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사사카와평화재단은 워싱턴 정가의 주요한 싱크탱크로 각종 일본 관련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주관하거나 후원한다. 과거 사사카와재단으로 불렀던 닛폰재단과의 관계로 보면 닛폰재단의 워싱턴 사무소 격이다. 닛폰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혐의자로 3년간 수감됐다 풀려난 사사카와 료이치가 경정(競艇)사업을 시작해 그 수익금으로 설립한 재단이다. 자선단체이지만 사상적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였던 극우 정치인 기시 노부스케의 이념을 추종한다.

▷블레어 이사장이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책임 회피로 일관한 실망스러운 문서’라고 비판한 ‘이사장 메시지’를 최근 사사카와평화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그는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는 주어가 분명한 능동태를 사용한 반면 아베 담화는 빈번하게 익명의 수동적 표현을 사용한 데다 장황하고 두서가 없어 책임 소재를 찾기 어려웠다고 일갈했다. 그는 “아베 총리 자신의 사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아베 총리는 지지자들을 교육시키고 다른 나라를 안심시킬 큰 기회를 놓쳤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블레어 이사장의 소감에 특별한 것은 없다. 일본의 침략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베 담화를 듣고 느꼈을 만한 당연한 소감을 말했을 뿐이다. 한국인이나 중국인만 피해의식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조차 아베 담화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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