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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金-黃 중계카메라 없는 곳서 독대… 현안 터놓고 논의한 듯

입력 2015-08-24 03:00업데이트 2015-08-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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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2+2 고위급 접촉/막전막후]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사이의 ‘비공개’ 별도 접촉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시간 모니터링을 당하면서 수시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훈령을 받았던 황 총정치국장이 비교적 자유롭게 얘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빅딜’ 의사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도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명시적인 재발 방지 약속을 대화 진전의 선결조건으로 내건 만큼 한국은 어떤 형태로든 북한의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 두 사람 간 비공개 회동에서 북한의 사과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은 잘못에 대한 사과 없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만 요구하는데 이는 우리에게 항복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사과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수위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는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고, 북한은 사과는 했지만 체면을 구기지 않는 ‘제3의 길’을 찾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4일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에 이은 포격 도발에서 남북한 고위급 접촉에 이르기까지 19일 동안 양면전술을 번갈아 구사했다. 한편으로 군사적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기습적으로 대화를 제안하는 이중적 전략이다. 북한군의 지뢰 도발에 우리 군 부사관 2명이 크게 다치자 우리 군은 보복 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군은 20일 대북 확성기가 설치된 서부전선에 포탄 4발을 발사하는 추가 도발을 감행했다. 우리 군은 29발의 대응 사격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가차 없는 응징’을 주문했다. 북한은 겉으로 위협을 가하면서도 뒤로 ‘화해’의 손을 내미는 협상 카드를 슬그머니 꺼냈다.

포격 도발 한 시간 뒤 김양건 노동당 비서는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에게 “사태 수습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운을 뗐다. 21일에는 김 실장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을 제안했고, 김양건 대신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내보내라는 우리의 수정 요구까지 받아들여 22일 ‘2+2’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사됐다.

하지만 북한은 대화 제의를 해놓은 상태에서도 △추가 도발 48시간 최후통첩 △준전시상태 선포 △‘전면전 불사’ 협박 등을 이어가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23일 오전 4시 15분까지 이어진 ‘밤샘협상’과 이날 오후에 재개된 2차 협상에서 남북은 이견만 확인한 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뢰와 포격 도발을 감행하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북한이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김관진 실장은 ‘도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약속’을 명시적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버티면서 오히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즉각 중단만을 요구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북한 대표단의 태도는 이전과는 달랐다고 한다. 대개의 회담에서 서로 자신의 의견만 반복할 경우 북한은 결국 ‘결렬’을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딱히 할 말도 없는데 자리만 계속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대표단의 엉덩이가 이처럼 무거웠던 적은 없었다”며 “북한도 이번만큼은 무엇인가 얻어가야 하는 절박한 사정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만큼 대북 확성기 방송과 한미 양국 군의 압박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청와대는 어느 때보다 강경한 분위기다. 우리가 더 이상 북한에 양보할 게 없다는 것. 청와대 관계자는 “명시적인 관련자 처벌과 재발 방지 약속이란 전제조건은 양보할 수 없다”며 “북한이 이것만 해주면 모든 게 잘 풀릴 텐데”라고 말했다.

북한이 도발에 대해 유감 표명 등의 형식으로 사과한 것은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등 4번에 이른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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